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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 부니 벌교 참꼬막 맛들었겠네

입력
2014.11.13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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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중심에 汝자 모양 여자도...기름진 갯벌 펼쳐진 남도의 寶庫

순천만 광활한 갈대밭·칠면초 군락

대포리 갯벌 꼬막 캐는 널배 재미...장척마을 앞바다 장엄함 핏빛 노을

갯노을길·휴양마을·하이킹 코스...

찬바람이 불면 여자만(汝自灣)의 갯벌은 더욱 차진다. 그 차진 갯벌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맛이 들기 시작하는 것이 바로 벌교 참꼬막이다. 전남 보성군 벌교 앞바다의 여자만 갯벌은 전국 참꼬막의 대부분을 생산한다. 벌교꼬막을 제일로 치는 것은 여자만의 기름진 갯벌 때문이다. 이곳의 갯벌은 다른 지역의 갯벌과 달리 모래 황토가 섞이지 않은 차진 진흙으로만 되어 있다.

여자만 갯벌은 11월부터 5월까지 꼬막 철이다. 벌교의 아낙들은 허리까지 푹푹 들어가는 갯벌에서 널배에 몸을 싣고는 꼬막 채로 뻘을 훑으며 꼬막을 채취한다. 지역민들이 제사상에 꼭 올렸던 꼬막은 남도 겨울 밥상의 대표 메뉴다. 벌교꼬막은 철분과 칼슘이 풍부해 웰빙식품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참꼬막 새꼬막 피꼬막 중에서도 껍데기의 골이 깊게 패인 참꼬막이 가장 맛이 뛰어나다. 소설 ‘태백산맥’으로 유명세를 더하게 된 벌교꼬막은 2009년 수산물 지리적 표시 전국 1호로 등록되기도 했다.

참꼬막은 썰물 때 뭍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새꼬막보다 성장이 더디다. 그래서 크기가 작지만 맛은 알차다. 양념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대로도 꼬막은 훌륭한 반찬 노릇을 한다. 간간하고 졸깃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배릿하기도 한 그 맛 때문에 술 한 잔을 부르는 최고의 안주이기도 하다.

참꼬막과 똥꼬막으로 불리는 새꼬막은 서식 환경부터 다르다. 참꼬막은 밀물 때에는 물속에 잠겨 있다가 썰물 때 바닷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간석지(干潟地)에서 자라지만 새꼬막은 갯벌이 드러나지 않는 수심이 좀 더 깊은 곳에 서식한다. 이 때문에 참꼬막은 갯벌에 사람이 직접 들어가 채취하고, 새꼬막은 배를 이용해 대량으로 채취한다. 생김새도 다르다. 참꼬막은 껍데기 부채꼴 모양의 방사륵(放射肋)이 21줄 내외, 새꼬막은 31줄이 있다. 참꼬막은 유생상태에서 상품이 되기까지 최소한 7년 이상 걸리지만 새꼬막은 2년 정도면 채취가 가능하다.

꼬막 채취가 시작될 무렵 벌교읍에는 꼬막축제 등이 열리며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벌교천변의 대포리 갯벌체험장은 꼬막잡기, 꼬막까기, 꼬막 삶고 시식하기, 널배타기 등 다채로운 갯벌체험 행사가 마련된다. 축제 기간 벌교 시내에 위치한 식당가는 제철 맞은 참꼬막을 맛보려는 관광객이 몰리면서 특수를 누린다.

하지만 최근 벌교 참꼬막은 생산량이 급감하고 가격이 치솟아 맛보기가 힘들어졌다. 일반 가정에서 쉽게 사먹을 수 없는 귀한 음식이 된지 오래다. 벌교읍 장암리 하장마을에서 40년간 꼬막 채취와 판매를 하고 있는 전 어촌계장 장동범(60)씨는 “바닷물 온도가 높아지는 등 어장 환경이 바뀐 탓에 참꼬막의 씨가 마르고 있다”며 “또 새꼬막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참꼬막 채취량이 크게 줄었다”고 했다.

벌교 참꼬막은 2000년 이전에 비해 10%도 캐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생산량은 2,200톤에 그쳤다. 채취량이 줄자 가격도 폭등해 참꼬막 20kg들이 한 망에 2005년 7만원에서 지난해는 30만원선까지 올랐다. 보성군은 지난 5월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벌교꼬막의 수급난 해소를 위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벌교읍 장암리에 꼬막종묘배양장을 만들었다. 군은 이곳에서 인공치패가 첫 출하된 9월 이후 지금까지 10여 톤의 종패를 어민들에게 공급했다.

꼬막이 나오는 여자만의 한 귀퉁이가 바로 일 년 내내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순천만이다. 한때 짙은 안개 속 거대한 갈대밭을 거닐며 소설 ‘무진기행’의 분위기를 느끼러 오는 여행객들만 찾던 이곳이 10여년 만에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거듭났다. 사실 세밑의 분위기를 잡기엔 순천만 만한 곳도 없다. 갯벌 사이 S자로 휘돌아가는 물길 위로 떨어지는 낙조의 풍경을 잡기 위해 전국의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이 몰려든다. 순천만의 또 다른 매력은 갯벌과 광활한 갈대밭, 칠면초 군락이다. 낙조에 비친 대대포구의 황금빛 갈대와 붉게 물든 칠면초는 눈이 부실 정도다.

그 순천만의 낙조는 곧 여자만의 낙조일 것이다. 순천시 구역을 지나 여수시로 넘어가 만나는 여자만은 순천만 그 이상의 낙조 풍경을 선사한다. 여자만에서 바라보는 저녁노을은 환상적이다. 여수시 여자만 인근의 해안길은 최근 그 풍경을 창에 가득 담는 찻집들이 줄지어 들어서고 있다. 여자만의 아름다운 풍경 때문이다.

순천에서 해안을 끼고 863번 지방도를 따라 여수시 소라면 사곡리 장척마을로 가는 길. 많은 사연을 담고 있을 것 같은 저수지와 오래된 성당, 조그마한 학교 등을 지난다. 그 소박한 길 끝에 너른 바다와 맞닥뜨린다.

바다를 눈에 담고 나면 스멀스멀 갯냄새가 코끝에서 맴돈다. 삶은 참꼬막을 닮은 냄새다. 여자만 바다의 냄새다. 여자만은 여수시 여자도에서 비롯된 바다의 이름이다. 여자도와 그 옆의 작은 섬들이 붙어있는 모양이 위에서 내려다 보면 한자로 ‘여(汝)’자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여수는 물론 고흥과 보성 벌교 별량 그리고 이곳 장척해변과 순천시 와온해변을 모두 이르는 너른 바다를 통칭하는 이름이다. 내해(內海)에 속하는 순천만 역시 이곳 여자만에 딸린 한 식구다.

여자만 바다의 물빛은 탁하다. 그러나 그것은 갯벌의 살아있음을 나타내는 색깔이다. 여자만의 너른 갯벌은 바다에 깃든 어민들의 생계 터전이다. 장척마을 주민 장모(72)씨는 “꼬막과 조개, 굴 등은 물론 전어, 멸치, 갈치, 문어, 조기 등 어류가 풍족하다”며 “여자만 갯벌은 아들 딸 학교를 보내고 시집장가 보내게 해준 고마운 곳이다”고 했다.

장척마을 해안의 너울 길은 요즘 해넘이길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지척 와온해변과 함께 노을이 가장 장엄한 곳으로 꼽히며 여수여자만갯벌노을축제도 매년 이곳 장척마을에서 열린다.

장척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2km쯤 떨어진 곳에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별장이 들어설 것이라는 풍문이 나돈 사곡리 궁항마을이다. 10여 년 전 궁항마을 해안가 임야와 바로 앞에 놓인 무인도인 ‘모개도’를 샀다고 전해진다. 여자만 시야에 크게 품은 데다 멀리 순천만 갈대밭, 고흥 팔영산까지 한 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궁항마을을 지나 복산리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여수세계박람회 개최 후보지로 선정될 정도로 경관이 아름다운 달천도가 있다. 지명은 달천도지만 다리가 놓이면서 육지쪽은 육달천, 섬쪽은 섬달천으로 부른다. 썰물 때는 섬 전체가 육지와 맞닿는다. 섬달천은 영화에나 나올법한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마을이다.

이 여자만은 2010년부터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가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주민들이 각종 행위에 제한이 따른다며 등재에 반대하면서 불투명해진 상태다.

여수시는 여자만 해변을 2018년까지 특화 관광지로 조성할 계획이다. 소라면 복산리 일원의 달천 해변 따라 갯노을길과 휴양마을을 추진하고, 율촌면 상봉리부터 화양면 장수리까지 60㎞ 구간에 하이킹코스를 개설하는 등 여수를 대표하는 생태관광지로 만든다는 복안이다. 이 사업이 마무리되는 2020년까지 여수-고흥을 잇는 11개의 다리가 놓이면 벌교-순천만-고흥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관광코스가 개발될 전망이다.

대여자도, 소여자도, 대운두도, 소운두도를 비롯한 많은 섬들과 공진반도, 운두만(雲斗灣)을 안고 있는 여자만. 저 먼 고흥반도 뒤로 떨어지는 태양은 여자만 그 깊고 그윽한 갯벌 위로 핏빛 노을을 녹여낸다. 세상을 움직이게 만들던 붉은 햇발의 숨이 자맥질하듯 기울고 나면 다시 적막한 세상으로의 침잠(沈潛)이 시작된다. 하지만 장엄한 일몰이 지고 난 여자만은 밤새 핏빛 생명을 또 잉태할 것이다.

보성·여수=하태민기자 ham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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