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밖에서 뇌물을 줬더라도 그 행위가 미국과 관계되면 미국으로 불러들여 처벌하는 이른바 해외반부패관행법(FCPA)이 한국인에게 최초로 적용돼 한국에 있는 해당 피의자의 미국 송환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워싱턴에 본부를 둔 법무법인 ‘아킨 검프’의 이수미 변호사는 12일 한국무역협회 워싱턴지부가 개최한 통상현안 포럼에서 “지난달 말 미 연방 대법원이 FCPA 위반 혐의를 받고 한국에 머물고 있는 K씨에 대해 법원 출두를 명령하는 취지의 결정을 내렸다”고 소개했다. 또 “이에 따라 미 사법당국은 K씨를 탈주 범죄자로 간주, 한국에서 K씨의 신병을 인도 받는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소식통에 따르면 K씨는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캘리포니아 주 오렌지카운티 소재 미국 밸브제조업체의 한국 지사장으로 근무하면서, 본사에 로비자금을 요청해 공기업인 한국수력원자력 직원들에게 5만여 달러의 뇌물을 준 혐의를 받고 있다. K씨는 조사가 시작되자 2009년 귀국한 뒤, 미 수사당국의 출두 명령을 거부하는 한편 미국 법원에는 변호사만 출석한 채 재판을 받게 해달라는 소송을 벌여왔다. 1심과 2심 법원은 지난해 6월과 올해 4월 각각 K씨 요청을 기각했으며, 미 대법원도 지난달 ‘심리거부’를 통해 하급심의 판결을 인정했다.
한 관계자는 “미국 정부의 범죄인 인도요청을 한국 정부가 거부한 사례가 극히 드물다”며 송환 가능성을 높게 인정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한수원의 뇌물 비리는 이미 한국에서도 관련자들이 사법 처리를 받은 만큼 K씨의 인도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K씨의 송환이 실제 이뤄질 경우 뇌물 공여를 일종의 마케팅으로 생각하는 일부 한국 기업의 관행상 파장이 예상된다. 미국 사법당국이 미국 기업과의 관련성 여부를 광범위하게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 변호사는 “미국에 서버가 있는 야후 메일을 쓰거나, 미국 달러로 송금했다는 점만으로도 ‘미국 기업과의 관련성’을 인정한 경우가 있었다”며 “사업상 미국과 조금이라도 연관 있는 한국 기업은 크게 신경을 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국 경쟁당국이 벌이고 있는 자동차부품 담합조사의 불똥이 현대중공업, 효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LS전선 등으로 튈 수도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날 포럼에서 법무법인 ‘스텝토 앤 존슨’의 공정거래법 담당 이중배 변호사는 “자동차부품 과징금을 낮게 물기 위해 일본 미쯔비시가 미국 경쟁당국에 전력변압기 분야의 담합 행위 정보를 제공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 경우 변압기를 수출하는 현대중공업, 효성중공업이 연루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는 “변압기 업종 업체 일부가 똑 같은 논리로 고압전선 시장의 담합행위 자료를 제공한다면, LS전선과 대한전선 등도 미 법무부 조사를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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