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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제 강화하자… 예금 빼가는 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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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제 강화하자… 예금 빼가는 부자들

입력
2014.11.1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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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거래 이달 말부터 형사처벌

5억 이상 예금 자산가들

4대 은행서 6개월 새 1조원 출금

보험ㆍ펀드로 갈아타고 현금 보관도

사업가 A(50)씨는 최근 두 아들 명의로 5억원씩 넣어뒀던 예금을 빼서 연금보험에 가입했다. 예금이자 때문에 세금이 불어날까 우려해 두 아들 앞으로 넣어뒀지만, 곧 차명거래 단속이 강화된다는 소식에 비과세 상품인 보험으로 갈아탄 것이다.

병원장 B(48)씨도 최근 가족과 지인 명의의 통장을 모두 정리해 현금으로 인출했다. B씨는 그 동안 예금 명의를 분산해 금융소득을 줄여 세금을 피해왔다. 그는 “금리도 낮은데 벌금까지 내야 할지도 모른다고 하니 돈을 은행에 둘 필요가 없다”며 “일단 현금으로 보관한 후 투자할 곳을 물색할 것”이라고 했다.

차명거래가 적발될 경우 형사 처벌이 되는 금융실명제법 개정안(차명거래금지법)의 29일 시행을 앞두고 자녀나 지인 명의 계좌에 예금을 넣어뒀던 고액 자산가들이 자금을 대거 옮기고 있다. 12일 한국일보가 국민ㆍ신한ㆍ우리ㆍ하나 등 4대 시중은행의 잔액 5억원 이상 개인 정기예금 잔액 변화를 살펴본 결과 9월말 현재 16조1,906억원으로 6개월 전인 3월말(17조1,559억원)보다 1조원 가량 빠져나갔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차명계좌 자금을 본인 명의로 바꾸면 세금문제가 생기고, 차명으로 보관하자니 불안해 차라리 예금을 빼는 자산가들이 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 동안 금융소득이 2,000만원 이상 되는 자산가들은 주로 가족들의 차명계좌를 이용해 금융소득종합과세를 피해왔다. 이자 등 금융소득이 2,000만원을 넘으면 종합소득세에 초과금액만큼이 합산돼 세금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정부도 계좌의 실소유자와 명의자가 합의하는 경우 사실상 차명거래를 허용해줬다. 차명거래로 인한 탈세 등이 적발되더라도 세금만 추징했다.

하지만 이달 말부터는 불법 차명거래 적발 시 형사처벌(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 대상이 된다. 이를 알선한 금융사 임직원도 형사처벌 대상이고, 차명자산은 명의자 소유로 추정해 실소유자가 돈을 떼일 가능성도 커진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선의의 차명거래는 허용하지만 불법 목적의 차명거래는 강력하게 단속해서 지하경제를 양성화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차명계좌에서 빠져 나온 자금은 비과세 저축성 보험이나 세금을 감수하고서라도 보다 공격적인 시장으로 흘러가는 것으로 보인다. 삼성ㆍ한화ㆍ교보 등 생명보험 3사의 비과세 저축성 보험(일시납)의 초회보험료는 8월 2,651억원, 9월 2,823억원, 10월 3,526억원으로 하반기 들어 가파른 증가세다. 배당주 펀드나 주가연계증권(ELS) 등 일부 투자상품에도 자금이 몰리고 있다. 한 증권사 자산관리사(PB)는 “거액의 현금을 들고 와 투자할 곳을 찾는 자산가들이 꽤 있다”면서 “세금을 감수하더라도 고수익을 낼 수 있는 ELS나 공모청약을 추천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일부 자산가들은 본인명의로 ELS에 가입한 뒤에 만기 전에 주가하락 등으로 평가액이 낮아진 틈을 타 자녀에게 증여세 면제한도만큼 나눠서 편법 증여하는 방법도 쓰고 있다.

아예 차명계좌에 넣어뒀던 예금을 현금으로 찾아서 은행 대여금고나 개인금고, 장롱 등에 보관하는 자산가도 늘고 있다. 한 은행 PB는 “거액의 자산가들은 거래내역이 노출되는 걸 꺼려하기 때문에 아예 제도권 밖으로 나간다”며 “투자하기에는 불안하고, 보험에 넣자니 장기간 자금이 묶여 5만원권이나 고액 상품권, 금괴로 현금화하는 자산가들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3분기(7~9월) 5만원권 환수율이 19.9%에 불과했다. 하지만 박철흥 미래에셋증권 VIP서비스팀 세무사는 “예금 등을 현금으로 보유하더라도 세무조사를 받을 때 과거 거래내역을 토대로 자금 용처 등을 추궁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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