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개 출판사서 2993종 신청
21일부터 새 도서정가제 시행돼
출판계ㆍ서점들 시장 변화에 촉각
할인율 축소ㆍ소비자 외면 우려
출판사들 가격 결정에 신중해지면
책값 오히려 떨어질 가능성도

21일부터 개정 도서정가제가 시행됨에 따라 새 제도가 출판시장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소비자들은 책값이 오르는 게 아닌지 궁금하다. 출판사와 서점들은 달라진 환경에 맞게 마케팅 전략을 새로 짜느라 바쁘다.
개정 도서정가제는 정가제를 모든 책으로 확대하고 할인율 한도를 종전 19%에서 15%로 축소한 게 골자다. 종전에는 실용서와 초등 학습참고서는 정가제 대상이 아니었다. 할인율이 축소됨에 따라 정가 1만원의 책이라면 지금까지는 19% 할인된 8,100원에 살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아무리 싸도 8,500원이다. 나온 지 18개월 이상 지난 구간을 무제한 할인 판매하던 것도 없어진다. 대신 구간은 다시 정가를 매겨 팔되 할인율 한도 15%를 지켜야 한다.
책 값이 오를까. 막연히 오를 것이라는 짐작과 달리 실제로 큰 변화는 없을 듯하다. 오히려 내려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출판사들은 더욱 신중하게 책값을 매길 전망이다. 할인율이 축소된 데다 가격 인상에 대한 소비자들의 심리적 저항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인호 바다출판사 대표는 “출판사들이 책값을 더 신중하게 정하고 (할인율 축소로 책값이 올랐다고 느끼는 소비자 반응을 감안해) 더 낮추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안형태 21세기북스 영업본부장은 “책값이 오른다고 볼 게 아니라 콘텐츠를 제값 주고 산다는 인식이 필요하다”며 “출판사들도 할인이 아니라 콘텐츠로 경쟁하게 됨에 따라 더 좋은 책을 합리적 가격에 내놓는 노력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한국의 책값은 소득 수준에 비해 외국보다 싼 편이다.
정가를 다시 매겨서 파는 구간의 값은 어떻게 움직일까.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6~11일 구간 재정가 신청을 받은 결과 146개 출판사 2,993종의 인하율은 평균 57%로 나타났다. 재정가를 신고한 책의 85%는 아동도서이고 어학과 실용서가 뒤를 이었다. 새 제도에 따르면 구간을 재정가로 팔려면 두 달 전에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신고해야 한다. 이번 접수는 개정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는 21일부터 재정가로 팔 수 있게 해달라는 출판사들의 요청에 따른 특별 조치다.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이 임박함에 따라 서점의 베스트셀러 순위도 영향을 받고 있다. 예스24, 알라딘, 교보문고 등 대형서점들이 최대 80~90%에 이르는 막판 할인 판매에 열을 올리면서 1,000원이 안 되는 책까지 등장해 베스트셀러가 됐다. 11월 둘째 주 현재 예스24에서 3위, 알라딘에서 5위인 ‘칼 비테의 자녀교육 불변의 법칙’(미르에듀 발행ㆍ2011)은 90% 할인된 980원에 팔리고 있다.
출판ㆍ유통업계는 할인율 축소의 영향으로 내년 1ㆍ4분기까지는 책 판매량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한다. ‘마지막 세일’을 강조하며 대형서점들이 벌이고 있는 할인 이벤트는 구간 재고를 처리하고 새 제도에 따른 단기 매출 감소에 대비하는 전략이다. 그 여파로 신간이 안 팔리는 바람에 출판사들이 출간을 미루거나 유보하기도 한다.
개정 도서정가제의 궁극 목표는 출판 생태계를 정상화하는 것이다. 무분별한 할인 경쟁을 막아 작은 서점도 살고 출판사도 살게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리 될지는 불투명하다. 온라인ㆍ대형서점과의 할인 경쟁에서 밀리는 작은 서점들은 여전히 불리하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온라인서점들의 무료배송과 카드사ㆍ통신사 제휴 할인은 새 제도에서도 그대로다. 규제 대상이 아니라 마케팅 전략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것도 못하게 해달라는 작은 서점들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에서 15%로 줄어든 할인율 덕분에 서점의 마진은 그만큼 늘지만 출판사에 돌아가는 몫은 없는 것도 문제다. 개정 도서정가제의 혜택을 서점, 특히 온라인ㆍ대형서점이 독차지할 가능성이 있다. 때문에 출판사들은 서점 공급가 계약의 재조정을 원하지만 서점들은 원치 않는 편이어서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다. 단행본 출판사들의 단체인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을 대행하고 있는 윤철호 사회평론 대표는 “개정 도서정가제가 소비자, 출판사, 서점 모두에게 이익이 되고 출판 생태계를 살릴 수 있도록 하려면 사회적 합의와 치밀한 보완이 더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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