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끝난 이사들이 긴급처리권 이용
설립자를 비리 김문기씨로 정관 변경… 교육부 뒤늦게 "위법성 검토 후 시정"
상지대 이사회가 사학비리 전력자인 상지대 김문기(82) 총장을 법인의 설립자로 바꾸는 정관 변경 안건을 의결하는 과정에서 임기가 끝난 이사들이 의결에 참여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상지대 이사회는 ‘급박한 사정이 있을 경우 임기가 지난 이사도 업무 처리를 할 수 있다’는 민법의 ‘긴급 처리권’을 근거로 들었는데, 예ㆍ결산 등 긴급 안건에만 적용돼야 할 권한이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교육부도 대법원 판례가 있다는 이유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어서 논란을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12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유기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교육부에서 제출 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상지대 법인은 이달 4일 긴급처리권에 의해 이사회를 열어 김문기 총장의 퇴진을 요구해온 정대화 교수를 직위 해제하고, 학교 설립자를 김씨로 바꾸는 정관 변경 안건을 의결했다.
앞서 2004년 대법원은 ‘상지학원과 전신 청암학원은 별개의 법인이 아니며 청암학원의 설립 당초 임원은 원홍묵씨 등 8명’이라고 판결했지만 상지대 이사회는 이를 무시하고 정관을 바꾼 것이다.
김문기 총장은 올해 3월 측근 인사들로 이사회를 장악한 이후 상지대 전신인 청암학원의 설립자 고 원홍묵 씨의 동상을 상지대에서 철거하는 등 자신을 설립자로 바꾸기 위한 시도를 해왔다.
이날 이사회에 참석한 이사들은 변석조 이사장 직무대리를 포함해 6명으로, 이 중 변씨를 제외한 이영수(69) 한이헌(70) 이사 등 5명은 올해 8월29일 임기가 만료된 ‘반쪽 이사’다. 이들은 현재 교육부에 임원 승인 신청을 낸 상태로, 상지대 이사 정수인 9명 중 임기가 만료되거나 사퇴한 이사를 제외하면 임기중인 이사는 변씨가 유일하다.
그런데도 상지대 이사회는 9월26일, 10월6일, 이달 4일 세 차례 이사회를 열어 정대화 교수의 직위해제와 상지대 교원징계위원회 위원 교체 등의 안건을 처리했다. 이사회는 급박한 사정이 있는 경우 임기가 지난 이사도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민법 제691조를 근거로 들었다. 상지대 법인 관계자는 “임기가 만료됐지만 긴급하게 처리가 요구되는 안건을 처리하기 위해 이사회를 소집했다”고 밝혔다.
교육부도 문제가 없다며 정관 변경을 사실상 묵인했다. 상지대 이사회는 9월18일 교육부에 이사회를 열 수 있도록 ‘긴급 처리권에 의한 이사회 개최 승인’을 요청했는데 당시 교육부는 “임기가 만료되지 않은 이사만으로 이사회를 개최할 수 없는 경우 이사회의 긴급처리권은 이사회에서 결정할 사안”이라고 답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임기가 끝난 이사들도 긴급 사무를 처리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면서도 “다만 어떤 것이 긴급 사무인지는 현재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다”고 해명했다.
직위 해제된 정대화 교수는 “민법에 규정된 긴급처리권은 급박한 사정이 존재하는 경우에 한해서 예외적으로 행사하는 권리인데 상지학원 이사회는 이를 학내 지배권을 강화하고 구성원을 탄압하는 무기로 악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지대 뿐만 아니라 조선대에서도 이사회의 긴급 처리권을 둘러싼 논란이 발생하고 있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전남지회장인 김성재 조선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조선대도 비리재단측이 추천한 이사들이 긴급처리권을 남용해 1년 가까이 이사회를 장악하고 심지어 이사 수를 확대하기 위해 정관 개정까지 시도했다”고 지적했다.
유기홍 의원은 “제한적인 권한행사만 인정돼야 하는 긴급처리권이 악용돼 거의 모든 권한 행사에 쓰이고 있다”며 “이에 대한 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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