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 방충망 구멍 크기 합의 못봐
파프리카 中 진출은 7년째 답보
가공식품 등 우회로 개척도
가격 경쟁력 떨어져 쉽지 않아
‘방충망 구멍 크기를 1.6㎜로 할 것인가 0.6㎜로 할 것인가.’
한국 과채류의 수출 효자품목인 파프리카가 8년째 만리장성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처럼 사소한 입장차이에 발이 묶인 탓이다. 수출 검역 협상을 진행중인 한중 양국이 파프리카를 재배할 온실 환풍구 방충망 구멍 크기, 온실 바닥 재질 등 작은 쟁점을 놓고 지루한 샅바싸움을 벌이고 있다. 병해충이 온실로 드나들지 못하도록 방충망 구멍을 더 작게 해야 한다는 중국과, 구멍이 너무 작으면 습기가 빠지지 않아 작물이 제대로 자랄 수 없다는 한국 측 입장이 팽팽히 맞서는 중이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등 여러 나라와 FTA로 관세 장벽을 넘었지만 신선농산품 수출을 위한 ‘검역 장벽’은 여전히 높다. 관세 장벽이 일소되어도 검역 협상이 완료되지 않으면 수출은 불가능하다. ‘한중 FTA 실질적 타결로 우리 경제 영토가 전세계 73%로 넓어졌다’는 자화자찬이 과일 수출 농가에는 그다지 와 닿지 않는 이유다.
12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농림축산검역본부의 ‘과실ㆍ과채류 수출검역협상 현황’ 자료에 따르면 한국이 현재 벌이는 수출 검역 협상은 총 59건. 한국 검역 당국은 배 사과 감귤 포도 단감 파프리카 딸기 토마토 멜론 9개 품목의 수출을 위해 미국 중국 인도 호주 등 15개국과 협상을 진행 중이다.
검역 협상은 짧으면 5, 6년, 길면 20년이 넘게 걸린다. 호주와 한국은 FTA 비준과 관계없이 한국산 사과, 감귤에 대한 검역협상을 1993년부터 벌써 22년째 계속하고 있다. 중국도 검역 장벽이 두텁기로 악명 높다. 파프리카와 멜론은 2007년부터, 단감과 딸기는 2008년부터, 포도와 토마토, 감귤은 2009년부터 검역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좀처럼 ‘OK 신호’가 나오지 않고 있다.
이처럼 검역 협상이 지연되는 이유는 세계무역기구 식품동식물검역규제협정(WTO SPS) 기준에 따른 검역 절차가 까다로워서다. 검역 절차는 ‘수출신청 접수→착수→병해충 예비위험평가→개별병해충위험평가→병해충위험관리방안작성→수입허용요건 초안작성→고시의뢰 및 입안예고→고시 및 수입허용’으로 이어지는데 수입국이 깐깐하면 단계 하나를 넘는데 수년씩 걸리기에 십상이다.
수입국이 이처럼 복잡한 절차를 자국 농산물을 지키기 위한 비관세 장벽으로 활용하는 것도 검역 협상을 지연시키는 주범이다. 한 품목에 대한 수출 신청을 하려면, 수입국으로부터 다른 품목에 대한 수입 신청을 받아들여야 하는 관행도 검역협상의 속도를 늦춘다. 인도산 망고와 국내산 사과 배 포도 파프리카를 두고 한-인도 양국이 진행중인 검역협상은 벌써 7년째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수입 과일 범람으로 위기를 맞은 국내 과수 농가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인 수출이 검역 장벽으로 가로막힌다는 것. 실제 수입액 상위 20개 품목 과실ㆍ과채류 총 수입액은 2010년 9억4,500만달러에서 지난해 14억9,800만달러로 3년 새 두 배 가까이 불었다. 반면 수출액 상위 20개 품목의 총 수출액은 2010년 1억9,500만 달러에서 지난해 2억3,300만 달러로 3,800만 달러 늘어나는 데 그쳤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검역이 필요 없는 가공식품에 우리 농산물을 많이 사용하게 하는 등 우회로를 개척하려 하지만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쉽지 않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수출 적합 품종을 개발하는 등 과일 수출 확대를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지만 검역 장벽은 현실적으로 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세종=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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