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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언제 밥 한 번 같이 먹자”

입력
2014.11.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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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부쩍 추워졌다. 한 해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게 실감난다. 그 동안 뿌린 빈말이 있다면 채워야 할 때다.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빈번하게 뱉어지는 빈말은 아마 “언제 밥 한 번 같이 먹자”일 것이다.

‘밥’은 생존과 직결된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에는 여러 의미가 함축돼 있기도 하다. 그런 인식을 기반에 두고 ‘730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1년 동안 730명의 페이스북 친구들의 도움으로 연명(?)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프로젝트다. 2(하루 두 끼)에 365(1년)를 곱하면 730이 나온다는 계산에서 붙인 이름이다.

나는 2011년 말부터 페이스북을 시작했고 현재 페이스북 친구 수는 약 1,900명이다. 이 중 나와 함께 밥 먹을 정도로 호감과 친밀감을 가진 분들이 얼마나 있을지 궁금했고, 그들과 직접 만나 인연을 쌓는 기회를 갖고 싶어 멍석을 깔았다. 구글 공유문서(goo.gl/gGOfoz)를 만든 뒤 페이스북을 통해 공유했다.

다른 사람에게 밥 한 끼 제공하는 것이 부담되지 않는 경제적 상황이면서 무언가 새로운 경험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 밥은 그분들이 산다. 대신 나는 그 사람이 정한 시간에 그가 편한 장소로 찾아간다. 사무실에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아도 되는 내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시간이라는 자원이 더 풍부하기 때문이다. 함께 식사하며 그들이 흥미를 가지고 있는 내 경험과 지식을 나눈다. 고민 있는 사람에게는 고민을 들어주고 해결책에 대해 머리를 맞대기도 한다. 사실 딱히 뚜렷한 해결책이 나오는 것 같지는 않다. 다만 귀 기울여 이야기를 듣는 대상에게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 그것만으로 고통이 경감될 수 있나 보다. 내게 고민을 얘기하고 표정이 한결 밝아진 분들이 있었다. 연애를 시작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남성분, 짝사랑 중인 남성분들에게 조언도 했는데, 그 분들이 내 조언대로 했다가 역효과를 얻었을까봐 그건 좀 걱정된다.

스스로도 위안과 위로를 받는다.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100명이 넘는 사람들과 함께 식사했다. 대부분 즐거운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본인의 자원을 쓰면서까지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분들이 상당수 존재한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좋은 사람들과 얘기 나누면 희망적인 기운도 받는다. 나를 본인들의 집에 초대한 한 부부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 부부는 결혼 뒤 1년 동안 세계여행을 했는데, 여행 막바지에 돈이 다 떨어져버렸다. 그 때 부부를 초대해 먹여주고 재워준 친구들이 있었고, 계속 여행을 이어가며 따뜻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부부는 그 때 받은 호의를 잊지 않고 누군가에게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런 프로젝트를 한다는 말을 듣자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던 부부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고 한다. 돌고 도는 선의와 호의, 그런 것들이야말로 이 세상을 조금 더 좋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굳어졌다. 우리는 서로 연결된 존재들이다.

730 프로젝트는 캐스팅(?)의 장이기도 하다. 불안감을 자극하고 생존을 위협하는 사회구조다. 사회구조를 개선하려는 노력과 동시에, 뜻이 통하고 비슷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서로 돕고 사는 것이 생존에 대한 위협을 덜고 사는 재미를 키우는 길이라 생각한다. 프로젝트를 통해 기계적인 진료 대신 환자와 관계를 쌓는 1차 진료를 하고 싶다는 치ㆍ의대생, 돈 없이도 재밌게 놀 수 있는 법에 대해 연구하는 ‘놀이연구가’, 사람의 온기를 온라인에 구현하고 싶어 하는 IT 개발자를 만났다. 이들에게 ‘마을 공동체’를 함께 꾸리는 것을 제안했고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는데, 설마 초면에 거절하기 어려워 빈말한 것이었나….

730 프로젝트는 빈말 듣는 게 싫어 시작한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빈말하는 이들에 대한 내 대답인 셈이다. “자꾸 언제 한 번 밥 같이 먹자고 하시는데, 그 언제가 도대체 언제죠? 자, 구글문서를 보고 빈 칸 중 편하신 일시가 있다면 그 때 뵙기로 해요.” 연말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한 해 동안 뱉은 빈말들을 채우는 시간을 보내시길 바라며, 내게 빈말 하신 분들도 구글문서를 채워주셨으면….

최서윤( 격)월간잉여 발행ㆍ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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