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트복지타운 장애인합창단
문턱 높은 예술의 전당 무대 올라
관객들에 먹먹한 감동 선사
“처음 당신을 만났죠. 만나자 마자 울었죠. 기뻐서 그랬는지 슬퍼서 그랬는지 (중략) 내 작은 선물에 너무 감동 마세요. 당신은 나에게 세상을 선물 했잖아요.”
11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 전당 IBK챔버홀에서 가요 ‘엄마’가 울려 퍼졌다. 솔로파트에 이어 합창단원의 화음이 쌓이자 객석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노래를 끝낸 합창단원이 진행요원들의 도움을 받아 잠시 출연자 대기실로 들어간 후에도 관객들은 먹먹한 표정으로 무대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빼빼로데이’였던 이 날은 지체장애인의 날이기도 했다. 장애인에게는 의미가 남다른 이날 경기 고양시 중증장애인 요양시설 홀트복지타운의 장애인 합창단 ‘영혼의 소리로’가 예술의 전당 무대에 섰다. 1999년 창단한 ‘영혼의 소리로’는 홀트복지타운에서 생활하는 중증장애인 250여명 중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 30명의 단원으로 구성된 혼성 합창단이다.
100여분간 이어진 공연에서 이들은 ‘넬라판타지아’ ‘마법의 성’ 등 11곡을 열창했다. 신체장애 외에 뇌병변, 정신지체, 다운증후근 등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단원 대부분이 악보를 보지 못하고 가사를 읽지 못해 짧은 동요 한 곡을 외우는데도 한 달 이상이 소요됐다. 그래서 이들은 일주일에 세 번, 각 한 시간씩 일년 내내 연습 했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예술의 전당 무대에 서는 만큼 올해 준비는 특히 험난했다. 합창단 지휘자 손종범(30)씨는 “예술의 전당에서는 종교 노래를 부를 수 없어 가스펠 등 기존 연습곡 대신 새 레퍼토리를 구성해야 했다”며 “공연 한 달 전부터는 매일 연습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이들이 예술의 전당에 서운함을 비친 것은 아니었다. 창단 멤버로 15년 째 합창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지혜(46)씨는 “예전부터 꼭 서보고 싶은 무대였는데 아무나 설 수 있는 곳이 아니라 꿈도 꾸지 않았다”며 “막상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안 갔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예술의 전당 문턱은 높았다. 2008년 조영남이 데뷔 40주년을 맞아 대중가수 최초로 예술의 전당 무대에 섰지만 ‘화개장터’ 등 가요를 레퍼토리에서 빼야 했다. 인순이도 대관 심사에서 번번히 고배를 마셨다. 그럼에도 아마추어 합창단인 ‘영혼의 소리로’가 예술의 전당 무대에서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친 것은 많은 사람이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JW중외그룹의 공익재단인 중외학술복지재단이 후원했고 예술의전당도 취지에 공감해 홀트복지타운과 공동주최를 결정했다. 연예인 주영훈ㆍ이윤미 부부는 진행자와 영상 내레이터로 재능기부를 했으며 팝페라 그룹 라스페란자도 무대를 축하하기 위해 시간을 냈다.
이들에게 보답이라도 하듯 ‘영혼의 소리로’ 단원들은 마지막 곡 ‘새들처럼’을 부르며 준비한 율동을 선보이는 등 혼신의 힘을 다해 공연을 마쳤다. 앙코르 곡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는 주영훈, 라스페란자, 관객이 함께 열창했다. “귀가 아닌 마음으로 노래를 들어달라”던 주영훈의 당부가 제대로 전달됐기 때문인지 앙코르 곡을 부를 때는 모든 관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술의 전당 문턱을 넘은 600여명의 화음은 이날 사회의 보이지 않는 벽도 함께 넘었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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