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저 선배를 이제 뭐라 부르지. 미치겠네.’
유통계열 대기업에 다니는 입사 4년 차 김모(26) 주임은 사무실로 출근하려다 코너에서 멈칫했다. 불과 어제까지 한 팀에서 같은 사원으로 일해온 9년차 고졸 출신 이모(34)씨를 보고서다. 이날은 김씨가 승진한 첫날. 그는 이씨를 부를 호칭 때문에 고민에 빠졌다.
승진 전까지 김씨에게 이씨는 직장선배 겸 사수였다. 공식적 사내 관계는 같은 사원이지만 김씨는 신입 때부터 이씨의 ‘짬밥’을 존중하려 “선배님”이라 꼬박꼬박 불렀다.
하지만 결국 승진이 둘 사이를 갈라 놓았다. 김씨는 “같은 일을 더 오래 일한 고졸 선배보다 먼저 승진을 하게 되니 불편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직장선배의 상사가 된 김씨는 지금 이씨를 “언니”와 “사원님”을 섞어 부른다. 스타벅스에 함께 갈 땐 “언니”라고 부르다가, 사무실로 돌아오면 "사원님”이라 한다. 김씨는 “언니라 부르는 걸 상사가 알면 눈총 쏘고 그렇다고 아무개 씨라고 하자니 하대하는 듯해 어색하지만 사원님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에너지 관련 기업에 다니는 이모(29)씨의 사정도 다를 게 없다. 그는 얼마 전 상사에게 한참 혼났다. 입사 4년 만에 대리로 오른 뒤 같은 사원이던 동료 3명을 ‘누나’라고 불렀기 때문. 그들은 이씨보다 10년 이상 고참이거나 나이가 6살 많다. “자네, 회사에서 누나가 어디 있나. 정신 못 차리는군.” 쓴 소리한 상사는 여직원들도 불러 세워 “이 친구 승진했으니 어지간하면 존대하라”고 충고했다. 이씨는 “형 누나이자 직장선배들에게 괜히 미안해 어쩔 줄 몰랐다”고 말했다.
대졸과 고졸 직원간 승진 격차 탓으로 호칭을 둘러싼 미묘한 눈치보기나 신경전도 더러 있다. 앞지른 자는 자칫 경솔하게 호칭을 뱉었다간 “학력 좋다고 까부는 X” “승진하니 개념상실” 등 ‘뒷담화’ 대상이 되기 십상이니 조심스럽다. 대학 나온 상사에게 적당한 호칭을 물어보거나 동기끼리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적절한 용어를 공모하기도 한다.
교육부에 따르면 고졸자의 취업률은 올해 33.5%. 2011년 23.3%에서 2012년 29.3%, 지난해 30.2%로 줄곧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대졸 신입이 대리를 다는 데 평균 3.7~4.1년(한국경영자총협회 자료)이 걸리는 반면 고졸 신입은 더 오래 그 문턱 앞에서 기다리는 게 우리나라 기업의 현실이다. 이른바 ‘학력 천장’인 셈이다.
처음엔 고졸이나 대졸이나 나란히 사원이지만 실상은 고졸이 한 단계 아래서 출발하며 어지간한 성과를 내지 않는 한 승진은 어렵다. 능력과 무관한 승진 격차로 가슴을 치는 높은 연차의 고졸 출신과 이들을 어찌 불러야 할지 몰라 고민인 낮은 연차의 대졸 직장인들은 지금도 같은 공간에 불편한 관계를 잇고 있다.
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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