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페라 테너로서 제 음악의 기본은 클래식입니다. 하지만 대중과 가까워지고 싶다는 욕구도 컸어요. 지난해 말 낸 5집 앨범 ‘파이널리’에 올드 팝과 대중가요를 넣은 것도 많은 분들과 교감하고 싶어서입니다.”
대중음악과 오페라를 결합한 ‘팝페라’라는 장르를 대중화시킨 젊은 테너는 어느새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고 자신의 위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팝페라 테너 임형주는 자신이 유행시킨 음악 장르를 사람들에게 더 많이 알려야겠다고 결심했다. 지난해 말 발매한 5집 앨범에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캔트 헬프 폴링 인 러브’나 냇 킹 콜의 ‘L-O-V-E’ 같은 올드 팝과 이문세의 ‘사랑이 지나가면’, 토이의 ‘바램’ 등 1990년대 한국 가요를 수록했다.
25일에는 이 앨범에 임희숙의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와 빛과 소금의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 2곡을 추가한 리패키지 앨범을 낸다. 이 두 곡 역시 여러 가수에 의해 리메이크된 명곡이다. “8년 만에 낸 정규 5집이라 애착이 컸고 반응도 좋았는데 국내 활동을 거의 하지 못해 아쉬웠다”는 그는 이번 리패키지 앨범과 26일 ‘로맨틱 콘서트’(세종문화회관)를 통해 아쉬움을 풀어버릴 생각이다.
1998년 데뷔할 때까지만 해도 발라드 가수를 지망했던 임형주는 당시 기획사에 의해 ‘보이 소프라노’로 방향을 틀었다. 그는 성악과의 만남을 “운명적”인 것이라 말한다. ‘타임 투 세이 굿바이’의 짧은 유행 외에는 팝페라 불모지였던 한국에 팝페라라는 개념을 처음 알린 가수가 됐고 2003년에는 카네기홀 독창회를 열며 세계 무대에도 섰다. 임형주는 “저의 역할은 ‘팝페라의 선구자’라는 이름에 걸맞게 한 우물을 파면서 팝페라를 알리는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형주는 사회 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어릴 적부터 신문을 좋아했고 말하기와 글쓰기도 좋아한다”는 그는 2010년부터 신문지상에 칼럼을 연재했고 25만명이 팔로하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서도 소신을 서슴없이 밝히곤 한다. 그는 “해외에선 음악가들이 사회적 발언을 편하게 하는데 한국에선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천 개의 바람이 되어’를 세월호 사건 희생자들에게 헌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봉사활동과 기부활동에도 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선다. 30대부터는 자선공연도 늘리려 한다.“운 좋게 세계의 주목을 받는 음악가가 됐으니 많은 분이 주신 사랑을 다시 돌려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게는 양로원에서 할머님의 손을 잡고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부르는 것이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것만큼 뿌듯하고 소중한 일이에요.”
임형주는 5집 리패키지 앨범에 이어 바로 새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이 앨범에는 팝페라로 재해석한 한국 대중가요만 수록할 예정이다. “팝이나 클래식이나 아리아 없이 한국 가요만으로 앨범을 채운 건 처음입니다. 발성도 예전의 오페라에서 팝 쪽으로 더 기울어진 노래를 부르려고 해요.” 노래로도, 사회활동으로도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임형주의 노력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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