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구름바다 오색치마, 절정의 늦가을 풍경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구름바다 오색치마, 절정의 늦가을 풍경

입력
2014.11.12 15:33
0 0
적상호 주차장 뒤편으로 보이는 적상산의 늦가을이 한 폭의 수채화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와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는 잎들이 섞인 모습은 가을과 겨울의 경계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무주=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적상호 주차장 뒤편으로 보이는 적상산의 늦가을이 한 폭의 수채화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와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는 잎들이 섞인 모습은 가을과 겨울의 경계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무주=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좀 늦었다. 하지만 끝난 건 아니다. 도심의 가을도 익을 대로 익어 어디를 둘러보나 단풍이고 낙엽이다. 중부지방 단풍은 끝물이지만 남부지역은 지금이 절정이다. 마지막까지 이 가을을 그냥 보내기 아쉽다면 좀 더 아래로 떠나보자. 붉은 치마(赤裳)를 두른 산이란 이름답게 단풍으로 치면 빠지지 않는 산이 전북 무주의 적상산이다. 이곳도 7부 능선 위로는 이미 낙엽이고, 중턱 아래로는 단풍이 한창이다. 지금 적상산은 가을과 겨울, 그 경계에 있다.

운해와 단풍이 만들어내는 비경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타로 내려가다 무주IC가 가까워오면 정상은 편편하고 아래로는 깎아지른 바위절벽이 넓게 펴진 웅장한 산을 만난다. 이 모습이 꼭 여인이 치마를 두른 것 같다고 하여 적상산이다. 무주의 6개 읍면은 한가운데 적상산을 중심으로 퍼져있다. 덕유산 국립공원에 속하지만 그래서 적상산은 홀로 우뚝한 느낌이다.

미리 얘기하면 적상산은 게으른 등산객을 위한 산이다. 해발 1,034m의 고봉임에도 불구하고 힘들이지 않고 단풍과 고산의 전망을 즐길 수 있다. 해발 860m부근 무주양수발전소 상부댐까지 찻길이 나 있다. 약 9km 꼬불꼬불 산악도로를 오르면 정상부근에서 뜻하지 않게 적상호의 푸른 물이 잔잔하게 여행객을 맞는다. 호수는 소박하다. 둘레가 기껏 2km정도로 웬만한 저수지보다 작다. 호수를 끼고 도로 끝에 닿으면 전망대다. 발전소의 수압을 완화시켜주는 조압수조(調壓水槽)에 계단을 둘러 옥상을 전망대로 개조했다. 밤과 낮의 기온 차이가 큰 이맘때쯤이면 단풍과 어우러진 적상산의 운해가 일품이다.

운해와 어우러진 적상산 단풍. 이맘때 적상산 전망대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운해와 어우러진 적상산 단풍. 이맘때 적상산 전망대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적상산 중턱의 단풍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적상산 중턱의 단풍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적상산 전망대에서는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풍경을 한번에 볼 수 있다.
적상산 전망대에서는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풍경을 한번에 볼 수 있다.

적상산 일출은 정상에서 시작한 단풍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한 달여 과정을 약2시간에 걸쳐 파노라마처럼 펼친다. 잎이 진 산꼭대기도 아침 햇살이 비추자 단풍 못지않게 붉게 물든다. 그보다 한참 아래로 마을과 낮은 산봉우리는 운해에 갇혔다. 그나마 높은 봉우리만이 머리를 내밀고 있다. 서서히 안개가 걷히자 골짜기마다 숨어있던 마을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산줄기를 타고 하강하는 아침햇살은 중턱에 걸린 단풍을 더욱 발갛게 물들였다. 붉은 기운은 태양의 상승속도와 반비례해 서서히 능선을 타고 흘러 내렸다. 약 2시간이 지나서야 안개는 서서히 성글어가고, 운해에 고립된 산들도 하나씩 풀려나기 시작했다. 정상인 향적봉만 보이던 덕유산의 높고 낮은 능선도 그제서야 원근감을 드러냈다. 그 사이 계곡까지 속속 파고든 햇살은 드디어 적상산 단풍의 본색을 드러냈다. 붉게만 보이던 산자락이 울긋불긋 그야말로 오색단풍이다. 간간이 섞인 상록침엽수의 청록색기운이 대조를 이뤄 적상산의 단풍을 더욱 화려하게 물들인다.

폭신폭신한 산길 따라 겨울 풍경여행

운해와 어우러진 단풍을 보는 것만으로도 새벽부터 서두른 보람이 있지만, 바로 내려오기는 허전하다면 안국사를 거쳐 산 정상과 향로봉으로 연결되는 등산코스가 있다. 노약자가 아니라면 산책하듯 가볍게 다녀올 수 있다. 산행은 적상호변의 적상산사고(史庫)서 시작한다. 적상산사고는 묘향산 사고를 옮겨온 조선 후기 5대 사고 중 하나다. 1614년 광해군때 건립한 사고는 원래 적상호 중앙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해방과 6.25격동기를 겪으면서 소실되고, 양수발전소를 건설할 때 남아 있는 주춧돌만 옮겨 현재의 위치에 복원했다. 보관했던 실록은 1910년 경술국치 때 일제가 서울의 구황실장서각으로 옮겼는데,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행방이 묘연해졌다. 지금은 부산역사기록관이 보관하고 있는 태백산본의 영인본(복제본)과 실록의 편찬과 봉안, 관리 등의 과정을 전시하고 있다. 일종의 사고 박물관인 셈이다.

조선 후기 5대 사고 중 하나인 적상산사고는 무주양수발전소를 건설하면서 호수 바로 위로 옮겨 복원했다. 지금은 사고 박물관 역할을 하고 있다.
조선 후기 5대 사고 중 하나인 적상산사고는 무주양수발전소를 건설하면서 호수 바로 위로 옮겨 복원했다. 지금은 사고 박물관 역할을 하고 있다.

적상산사고에서 구불구불 약 1.2km가량 도로를 따라 오르면 안국사다. 나라를 편안하게 한다는 이름에서 보듯 호국사찰이다. 강화 정족산 전등사, 평창 오대산 월정사, 봉화 태백산 각화사 등과 함께 깊은 산중에 자리잡고 있는 사고의 수호책임을 맡은 사찰이다. 사고와 마찬가지로 적상호에 자리잡고 있다가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극락전 왼편 천불당은 유일하게 남아있는 선원각(왕실 족보를 보관하던 곳) 건물이다. 극락전의 좌측 뒤편 한 귀퉁이는 단청이 없이 원목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100일의 단청작업 중 단 하루를 참지 못한 주지가 99일째 진행상황을 들여다보자 단청작업을 하던 학이 날아가 버렸다는 ‘학 단청’의 전설이 남은 흔적이다. 안국사 바로 아래로는 적산산성의 낮은 돌담이 가지런하다. 바위절벽이 천혜의 요새를 이뤄 높게 쌓을 필요가 없었다. 적상산성은 8부 능선에 약8km가량 남아있다.

안국사 극락전의 미완성 단청엔 '학 단청'설화가 남아 있다.
안국사 극락전의 미완성 단청엔 '학 단청'설화가 남아 있다.

안국사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약간의 오르막만 빼면 안렴대에서 향로봉까지 약 1.7km 등산로는 산책길이나 다름없다. 안렴대는 고려시대 거란이 침입했을 때 삼도 안렴사가 진을 치고 난을 피한 곳이라 이름 붙인 곳이다. 아찔한 바위절벽의 끝이다. 오른편 아래로는 적상면을 통과하는 대전통영고속도로가 아득하고, 왼편으로는 덕유산 향적봉과 능선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어느 쪽을 보더라도 전망이 시원하다.

바위 절벽 끝인 안렴대에서 본 풍경. 발 아래로 까마득하게 대전통영고속도로가 지나고, 구름 위로 덕유산 자락 산들이 원근감을 드러낸다.
바위 절벽 끝인 안렴대에서 본 풍경. 발 아래로 까마득하게 대전통영고속도로가 지나고, 구름 위로 덕유산 자락 산들이 원근감을 드러낸다.
바위 절벽 끝인 안렴대에서 본 풍경. 안개가 걷히자 덕유산 향적봉과 높고낮은 능선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바위 절벽 끝인 안렴대에서 본 풍경. 안개가 걷히자 덕유산 향적봉과 높고낮은 능선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적상산 정상은 이미 모두 낙엽이 져 겨울 풍경이다. 향로봉으로 이어진 폭신폭신한 흙길을 걸으면 쓸쓸함보다 푸근함이 묻어난다.
적상산 정상은 이미 모두 낙엽이 져 겨울 풍경이다. 향로봉으로 이어진 폭신폭신한 흙길을 걸으면 쓸쓸함보다 푸근함이 묻어난다.
적상산 정상엔 잡목이 거의 없어 평평하게 깔린 낙엽이 인공정원처럼 정갈하다.
적상산 정상엔 잡목이 거의 없어 평평하게 깔린 낙엽이 인공정원처럼 정갈하다.

적상산은 적색 역암으로 된 깎아지른 바위산이지만 향로봉으로 가는 등산로는 폭신폭신한 흙 길이다. 높은 산이라는 것을 잊을 만큼 동네 뒷산을 걷는 듯 편안하다. 잡목이 거의 없어 바닥을 평평하게 덮은 갈색 나뭇잎이 자연정원인 듯 정갈하다. 초록빛이라곤 키 작은 조릿대 밖에 남지 않았고, 나뭇가지는 이미 앙상하지만 쓸쓸함보다는 푸근함이 묻어난다. 내려오는 길에 적상호 주차장 뒤편의 숲이 한 폭의 수채화다. 앙상한 나뭇가지와 단풍이 남은 나무가 섞인 모습이 계절의 경계에서만 볼 수 있는 늦가을 풍경의 축소판이다. 2시간 가량의 짧은 산행으로 가을과 겨울을 한번에 볼 수 있는 것이 이맘때 적상산의 매력이다.

무주=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여행메모]

●적상산 정상으로 오르는 도로는 무주IC를 기준으로 보면 산의 반대편에 있다. 고속도로를 나와 19번 국도를 타고 무주읍내를 통과 한 후 안국사 방향 727번 지방도를 타면 된다.●적상호로 오르는 도로는 눈이 내리면 통제한다. 적상산의 마지막 가을풍경을 즐기려면 조금 서둘러야겠다. ●적상호에서 안국사까지도 도로가 포장 돼 있지만, 안국사의 주차공간은 10여대에 불과하다. 특별히 몸이 불편한 사람이 아니라면 적상호 주변의 넓은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걷는 게 현명하다. ●이 정도 산행은 너무 싱겁다고 느낀다면 적상산의 서측 서창마을에서 시작하는 등산로를 택하면 된다. 약 3.6km의 가파른 산길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