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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만 즐거운 마리, 극도 즐거운 루돌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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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만 즐거운 마리, 극도 즐거운 루돌프

입력
2014.11.1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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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황태자 루돌프 닮은 듯 다른 두 뮤지컬 비교해 보니

혁명·사랑 주제 외형은 비슷하지만 캐릭터 설정·극의 개연성 등 황태자 루돌프가 판정승

평단의 반응도 극명하게 갈려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혁명과 사랑 이야기를 두 축으로 극이 전개되는 등 닮은 점이 많지만 스토리 개연성에 대한 평단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혁명과 사랑 이야기를 두 축으로 극이 전개되는 등 닮은 점이 많지만 스토리 개연성에 대한 평단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유럽 황실의 실존 인물을 다룬 두 편의 뮤지컬이 나란히 무대에 올랐다. 프랑스 격변기의 중심에 섰던 마리 앙투아네트와 ‘세기의 사랑’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 황태자 루돌프의 일대기가 절절한 음악과 어울려 관객 앞에 섰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2006년 일본 도쿄 제국극장 초연 이후 독일 브레멘(2009년), 독일 테클린부르크(2012년) 무대에 올랐다. 뮤지컬 ‘모차르트!’ ‘엘리자벳’의 극작가 미하일 쿤체와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 콤비의 작품으로 이번 무대가 한국 초연이다.

‘황태자 루돌프’는 ‘지킬앤하이드’ ‘카르멘’ 등으로 유명한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이 빈극장협회(VBW)와 처음으로 손을 맞춘 작품으로 한국에서는 2012년 초연 이후 올해 두 번째 막이 올랐다.

두 작품은 유럽 역사 속 실존인물과 사건을 다룬 것 외에도 닮은 점이 많다. 특히 혁명과 사랑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에서 두 작품의 외형은 판박이에 가깝다.

하지만 비슷한 소재와 외형에도 불구하고 평단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스토리의 개연성 부족 ▦막장 코드 등 혹평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반면 ‘황태자 루돌프’는 ▦충실한 정통 멜로 ▦명확한 메시지 등 호평이 대부분이다. 그만큼 두 작품은 ‘닮은 듯 다른’ 뮤지컬이다.

두 작품의 명암이 엇갈리는 근본적인 원인은 두 개의 중심소재(혁명과 사랑)간 균형감각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마리 앙투아네트’ 1막의 경우 혁명의 전개는 지나치게 빠른데 반해 앙투아네트와 악셀 폰 페르젠 백작간 사랑의 서사는 더디다. 이 때문에 혁명의 진행과정이 촘촘하게 전달되지 못하고 두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는 “사랑해” “우린 이루어질 수 없어”라는 식의 대사만 끊임없이 반복되며 도돌이표를 그린다.

전개 속도의 불균형은 2막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1막에서 혁명 과정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 탓에 2막 스토리의 대부분은 프랑스 혁명에 치우쳤고 이 때문에 애초에 설정했던 두 개의 중심축이 균형을 잡지 못한 채 무너진다. 2막에서도 앙투아네트와 백작간 사랑 이야기가 종종 등장하기는 하지만 막 자체가 이미 혁명에 초점을 맞춘 탓에 ‘사랑 타령’은 오히려 번번히 극의 흐름을 깨는 계륵으로 전락한다.

반면 ‘황태자 루돌프’는 첫 걸음부터 두 소재의 비중과 전개 속도가 적절한 보조를 맞춘다. 정략결혼에 아무런 행복도 느끼지 못하는 황태자,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혈연보다 정적에 초점을 맞춘 부자관계 등 서사의 초석을 탄탄하게 깔았다. 여기에 황태자와 마리 베체라의 사랑 이야기도 정치적 동지애에서 연인간의 사랑으로 발전하는 등 극의 역사적 배경과 사랑 이야기의 이음새가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해 훨씬 자연스럽다.

극 초반 스토리의 전개과정은 캐릭터 설정과 극의 개연성에도 영향을 끼친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경우 1막에서 페르젠 백작과 불륜에 빠진 한 명의 여인으로 묘사됐던 앙투아네트가 2막에서 억울하게 누명을 쓴 비운의 왕비가 되는데, 같은 인물임에도 전혀 다른 배역이라는 착각을 일으킬 만큼 캐릭터가 분절돼 있다. 내적 갈등을 겪으며 조금씩 변모해가는 앙투아네트의 모습을 그리기에는 전체적인 스토리의 균형이 들쑥날쑥한 탓이다.

이처럼 주인공의 캐릭터가 온전히 자리 잡지 못한 탓에 상대 배역의 캐릭터도 요동친다. 극 중 왕비와 대비되는 캐릭터이자 혁명의 중심 인물로 등장하는 마그리드 아르노라는 허구의 인물은 극 초반 앙투아네트를 혐오하는 캐릭터에서 극 후반 왕비를 이해하고 옹호하는 인물로 변한다. 하지만 스토리 전개 상 마그리드의 내적 변화를 촘촘하게 그리지 못하다 보니 극은 그가 변화한 결정적인 계기를 ‘알고 보니 앙투아네트와 자매였다’는 식으로 무리하게 설정한다. 뜬금없이 등장하는 이 ‘출생의 비밀’은 관객의 실소를 부를 만큼 극의 흐름과 개연성을 완전히 무너뜨린다. 차리리 극 후반 묘사되는 혁명가들의 폭력성과 부조리를 더 부각했다면, 그래서 마그리드의 내적 변화가 혁명가들의 이중성 때문이라는 것에 더 초점을 맞췄다면, 현재 ‘마리 앙투아네트’에 쏟아지는 비판(‘프랑스 혁명을 평가절하했다’)의 목소리는 더 커졌을지언정 극의 짜임새에 대한 평단의 비판은 줄었을지 모른다.

이에 반해 ‘황태자 루돌프’는 잘 짜인 초반 서사를 토대로 ‘권총자살’이라는 종착역까지 극을 순조롭게 끌고 간다. 혁명동지들과 함께 오스트리아 사회를 비판하는 신문을 발간하는 황태자와 체제 유지를 위해 황태자의 이중생활을 감시하는 타페 수상의 대립구도가 명확하다. 동시에 아들이자 정적인 루돌프를 바라보는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모습은 부성과 권력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물의 내적 갈등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마리에게 남편의 마음을 빼앗겼음에도 권력의 끈을 놓지 못하는 스테파니 황태자비, 수상의 눈과 귀로 활약하는 빌리굿 등 다소 비중이 적은 배역들도 저마다의 사연을 담아 극의 개연성을 높인다. 다만 권총 동반자살 직전 루돌프와 마리의 절박함이 잘 표현되지 않은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두 뮤지컬은 무대 세팅과 의상에서도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무대는 프랑스 황실과 귀족들의 상징인 화려한 가발, 형형색색의 드레스 등을 통해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비스듬히 경사진 무대로 세련미를 더했고 360도 회전을 통해 베르사유 궁전, 야외 무도회장, 정원 등으로 공간 배경이 바뀌는 장면은 감탄을 자아낸다. 반대로 ‘황태자 루돌프’는 단출한 무대를 선보인다. 등장인물의 의상도 화려하기보다 절제된 색깔과 장식으로 표현했다. 특히 각 장면마다 적절한 구도를 찾아 움직이는 배우들의 동선은 관객의 몰입도를 높인다. 그만큼 기본에 충실한 뮤지컬이다. 스토리의 개연성과 캐릭터 설정에서 사뭇 다른 평가를 받고 있는 두 뮤지컬이지만 무대 연출만큼은 모두 훌륭하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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