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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파트엔 甲乙이 없다

입력
2014.11.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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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갑(甲)과 을(乙)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힘센 자와 약한 자. 가진 자와 없는 자. 권력을 휘두르는 자와 그 아래에 무릎 꿇는 자. 언제부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렇게 이분법적인 틀에 넣어 생각하게 됐는지 자못 궁금하다.

7일 아침 입주민의 횡포를 견디다 못해 분신자살을 기도했다는 강남의 한 아파트 경비원이 결국 숨졌다. 정부에서 주택관리 정책을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너무도 충격적이고 가슴 아프다. 경비원에게 인격모독적 언행을 했다는 입주민. 그런 모욕적인 대우를 받으면서도 참을 수밖에 없었던 경비원. 그가 숨진 뒤 동료 경비원은 스스로 “우리는 을이다”고 했다. 여기서도 갑과 을이라는 표현이었다.

결국 갑과 을은 ‘나에게 불리함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자와 그 상황을 침묵으로 받아내야만 하는 자’라는 의미로 요약된다. 그리고 그런 관계를 당연한 사회의 이치로 여기는 사람들 속에서 소위 ‘갑질’이라 불리는 ‘갑의 횡포’가 생겨나지 않았는가.

어찌 인간관계가 이처럼 비인간적인 틀 속에 갇히게 된 걸까. 역지사지(易地思之), 측은지심(惻隱之心), 서로의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보고, 서로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더라면. 이 말이 입동도 지나 추워지는 요즈음에 더욱 간절하게 느껴진다. 우리 마음속에 이 말의 의미가 살아있다면, 갑의 횡포에서 비롯된 참담한 일들이 벌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정부가 운영하는 국민신문고에 공동주택관리와 관련해 접수되는 민원의 상당수는 관리주체인 관리사무소, 입주자대표회의, 입주민, 그리고 청소ㆍ경비 등의 용역업체가 자신의 입장에서 상대방을 탓하고 원망하는 내용이다.

계약기간 만료 전 입주민들에 의해 사무실에서 쫓겨나 억울함을 호소하는 관리소장, 자신이 보는 앞에서 관리소장이 직접 정부 관계자와 통화하는 내용을 들어야만 믿을 수 있다는 입주자 대표,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입주민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불만인 입주민, 입주민과 주택관리업자 사이에서 마음 졸이는 용역업체 등. 이들이 처음부터 서로를 불신하고 그 불신으로 인해 서로에게 갑과 을의 관계가 이뤄진 게 아닐까.

그런데 공동주택 관리의 측면에서 보면 도대체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가. 혼란스럽다. 계약 전 을이었던 주택관리업자는 관리업체로 선정된 이후 청소ㆍ경비 등의 용역업체에게는 갑이 된다. 입주자대표회의가 선정되기 전 갑이었던 입주민은 입주자대표회의 구성 후 오히려 을이 돼 있다. 때로는 갑의 위치에서, 때로는 을의 위치에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정부는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공동주택단지에서의 공동체문화 활성화를 위해 고민하고 있다. 아파트단지에서 입주자와 관리주체가 함께 소통과 화합을 위한 활동을 하게 되면 필요한 경비를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지난 7월 발의된 ‘공동주택관리법’안에도 담겨 있는 내용이다.

서로가 때로는 갑과 을이 될 수 있기에 서로의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자.

함께 공동주택관리를 해야 하는 입주민, 관리주체인 주택관리업자와 관리사무소, 용역업체는 서로 반대의 편에 있는 것이 아니다. 아파트에서는 갑과 을이 따로 있어서는 안된다. 함께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행복한 아파트단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주체들이기 때문이다. 이젠 불신을 거둬내고 갑과 을이 하나가 돼 아름다운 공동체 문화가 형성되고 정착되기를 기대한다.

서정호 국토교통부 주택건설공급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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