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벌어졌던 크림전쟁은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이 활약했던 전쟁으로 더 유명하다. 그런 그녀가 영국 왕립통계학회의 제1호 여성회원이 될 정도로 아주 유능한 통계학자였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당시 전투에서 전사한 병사보다 병원의 불결한 위생시설 때문에 전염병 등으로 사망한 군인의 숫자가 더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정치인들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인포그래픽을 만들어 정치권과 국민을 설득해 영국 병원의 위생 상태 개선에 기여했던 것이다. 의술 뿐만 아니라 통계로 더 많은 생명을 구한 셈이다.
흔히 통계를 근대 이후의 학문으로 알고 있지만 통계의 역사는 사실, 국가의 역사와 뿌리를 같이 한다. 조세 징수와 징병을 위해 인구센서스와 같은 통계 조사가 필요했다. 고대 바빌로니아와 고대 이집트에서도 인구센서스를 실시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니 생각보다 역사가 오래다. 그 후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통계는 국가의 일방적 필요가 아닌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도구로 발전했으며, 현대의 통계는 빠르게 변하는 사회의 모습을 잘 포착해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는 나침반과 같은 역할로 진화하고 있다. 더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정보 시대에는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는데, 통계를 근거로 한 의사결정은 오류를 최소화하고 선택에 대한 불확실성을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뭇 별들이 반짝거리며 여기가 바른 길이라고 속삭일 때 정확하게 북극성을 찾아내 방향을 감지하는 캐러반의 지혜가 지금도 필요하다.
이렇듯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는 통계 생산과 서비스를 업으로 삼고 있는, 더구나 국가 통계를 총책임지고 있는 입장에서 국민들의 다양한 요구는 늘 무거운 책임감으로 다가온다. 실생활과 기업활동에 보다 유용하고 국가 정책 수립에 근간이 될 통계들을 정확하게 생산해 신속히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통계는 신속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인구센서스의 경우는 국민 전체를 조사해야 하기 때문에 조사, 데이터 처리, 결과 분석에 거의 일 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조사 시점에서 일 년이 지난 뒤에야 결과를 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인구센서스는 매년 조사하지 못하고 5년마다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통계청에서는 이런 한계들을 극복하기 위해 기본 조사항목은 정부부처들이 보유하고 있는 21종의 대규모 행정자료를 결합해 현장조사를 대체해서 매년 통계를 서비스할 계획이다. 중앙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생산한 국가통계를 모두 모아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국가통계시스템(KOSIS)’을 비롯해 최근 각광받고 있는 빅데이터를 활용한 ‘온라인 물가 작성 시스템’과 ‘블루슈머’와 같은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 인터넷에 공개된 수십만 건의 가격 정보를 매일 수집해 피부에 와 닿는 새로운 물가 통계를 만드는 ‘온라인 물가 작성 시스템’과 경쟁자 없는 새로운 시장의 소비자를 의미하는 블루슈머 등은 통계를 활용해 최근의 트렌드를 발 빠르게 읽어내는 사례라 할 것이다.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는 ‘해외 직구’ 등 온라인 쇼핑 활성화를 위해 각종 규제 개선 등의 정책을 논의하는 시대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통계청에서는 온라인 쇼핑과 관련한 통계를 발표하고 있으며 이를 더욱 개선하기 위해 11일 국회에서 관련 산업계와 학계의 주요 인사들이 참석하는 국내외 온라인 시장 전망에 대한 ‘온라인 유통’ 정책 세미나도 개최했다.
앞으로 통계가 국민 기대에 부응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통계와 관련된 비정상적 현상들을 정상화하는 노력도 지속해 나가야 한다. 각 기관들이 작성한 통계가 KOSIS에 신속히 수록하지 않거나 함량 미달의 자료가 여과되지 못했던 기존 관행을 개선해 품질 높은 통계 자료들이 신속, 정확하게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그 중 하나다. 정상화된 통계가 합리적인 의사결정과 미래를 준비하는데 믿음직한 나침반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모든 통계인의 책무다.
박형수 통계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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