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령 없었다는 피고인들 기억 엇갈려, 검찰 제출 증거만으로 입증 부족
기관장은 부상 동료 인식하고도 그대로 둔 채 결국 사망해 살인죄
세월호 유족들은 “국민적 분노를 외면한 기계적 판결”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재판부는 “검찰의 이준석(68) 선장 등에 대한 살인죄 입증이 부족했다. 양형 기준에 따른 중형(重刑)”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결국 재판부의 1심 판결로 검찰은 승객들을 내버려두고 탈출한 이 선장 등에 대한 살인죄 입증을 부실하게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 선장 등 세월호 선원(15명) 사건에서 1심 재판부는 11일 이 선장 등 간부 선원 4명에게 적용된 살인죄를 무죄로 판단, 변호인 쪽 손을 들어줬다.
검찰은 이 선장이 수사 초기에는 승객들에 대한 퇴선 명령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가 재판 과정에서 다른 피고인들의 진술을 참고해가며 퇴선 명령 여부 및 시기를 수 차례 번복한 점 등으로 미뤄 퇴선 명령 자체가 없었다고 봤다. 하지만 재판부는 사고 당시 조타실 상황을 들어 “해경의 경비정이 구조를 위해 사고 현장에 도착할 무렵 이 선장이 퇴선 명령을 했다는 법정진술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퇴선 명령이 있었다는 피고인들의 주장은 일관된 반면 퇴선 명령이 없었다는 피고인들의 경우 당시 다른 선원들의 행동을 기억하지 못하는 때가 많았다”며 “이 선장 등이 세부적 사실에 대해 진술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의 진술이 허위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법원 관계자는 “이 선장 등의 살인에 대한 미필적 고의를 입증하는 책임은 결국 검찰에 있다”며 “그러나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이 선장 등이 ‘승객들이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의사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인정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다만 재판부는 세월호가 급격히 기울면서 굴러 떨어져 부상을 입은 동료 승무원 2명을 그대로 둔 채 퇴선해 사망에 이르게 한 기관장 박모(53)씨에 대해서는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박씨가 동료 선원에 대한 법률상 구호의무는 없지만 비상상황 발생 시 인명 구조를 최우선하는 것은 상식에 의해서도 성립한다”며 “특히 부상 선원의 사망결과를 인식하고 있었던 만큼 살인죄를 져야 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함께 구속된 강모(42ㆍ1등 항해사)씨는 부실고박을 묵인하고 화물을 많이 적재하기 위해 평형수를 적게 실음으로써 세월호가 복원성을 갖추지 못해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한 데에 중요한 원인을 제공했고, 김모(46ㆍ2등 항해사)는 세월호 전복 직후 선내방송을 시도했으나 조타실 방송장치의 스위치를 잘못 조작해 선내방송을 하지 못함으로써 선내에 대기한 승객들이 세월호에 그대로 남게 하는 결정적인 잘못을 저질렀다고 판시했다.
박모(25ㆍ3등 항해사)씨는 조타 실력이 좋지 않은 조모(55ㆍ조타수)씨에게 정확한 항해용어로 소각도의 조타를 지시해야 함에도 이러한 주의의무를 태만히 했고, 조모씨는 세월호의 복원이 나빠 소각도로 조타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했음에도 불구하고 방향을 착각해 우현으로 대각도 조타를 함으로써 세월호가 복원성을 잃고 전복되도록 한 혐의다.
재판부는 신모씨 등 나머지 피고인 9명에겐 승객구호를 위해 필요한 행위를 하지 않은 점 등이 인정된다며 징역 5~7년을 선고했다.
광주지검은 “재판부의 공소사실 및 법리 판단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며 항소하기로 했다. 세월호 피해자 변호인 측도 피고인의 진술에만 의존해 살인의 미필적 고의를 좁게 해석했다”며 항소할 뜻을 밝혔다. 검찰은 피고인 전원에 대한 공판 신문 조서 등 자료 분석을 통해 이 선장 등에게 살인의 고의가 있었는지에 대한 확인작업에 나섰다. 검찰이 퇴선 명령을 내렸다는 이 선장 등의 진술이 허위임을 입증한다면 이 선장 등의 최종 형량이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
광주=안경호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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