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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90년대에 바침

입력
2014.11.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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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다른 어떤 예술보다 추억과 과거를 소환하는 데 능하다. 익숙한 멜로디 한 소절이면 까맣게 잊고 있던 가사를 생각나게 하고 헤어진 연인이나 지나간 젊은 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그 노래를 들었던 특정한 시간과 공간, 상황을 엮어내는 이 탁월한 능력 덕에 음악은 시대의 훌륭한 대변자이자 세대를 묶는 튼튼한 고리이다. 때문에 음악가의 죽음은 세대의 슬픔이자 그 세대를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지난 10월 27일 우리는 90년대를 함께 기억할 매개자를 잃었다. 90년대 초중반에 대학을 다녀 이제 마흔 안팎이 된 이들에게 신해철의 급작스런 죽음은 자신들의 젊음을 영원히 잃어버린 듯한 상실이었다.

긴 민주화투쟁 끝에 대통령직선제를 성취한 1987년에서 IMF 위기가 터진 1997년의 10년은 한국사회의 큰 이행기였다. 모든 이들이 자신은 낀 세대라고 말하는 한국사회지만 말이다. 운동권 중심이던 대학가에는 신세대의 대중문화가 자리를 잡았고, 군부독재의 끝나고 문민정부, 그리고 IMF를 거쳐가는 동안 사회는 신자유주의로 재빨리 재편됐다. 세계화를 내세우며 그간 걸어잠궜던 문을 열기는 했지만, 인터넷과 전지구화가 세계를 납작하게 만들기 이전이었다. 1988년 대학 가요제를 통해 데뷔해 1997년 넥스트를 해체한 신해철의 전성기는 공교롭게도 이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 신해철과 넥스트는 거의 시종일관 자신의 길을 굳건히 걸어가는 ‘나’를 노래한다. 데뷔 초 솔로 앨범에서 “난 약해질 때마다 나에게 말을 하지, 넌 아직도 너의 길을 두려워하고 있니, 나의 대답은 이젠 아냐”라고 노래했고, 프로그레시브와 메탈을 버무려 사운드는 예전과 같은 음악이라고 할 수 없는 넥스트 앨범에서도 “난 아직 내게 던져진 질문들을 일상의 피곤 속에 묻어 버릴 수는 없어, 언젠가 지쳐 쓰러질 것을 알아도 꿈은 또 날아가네 절망의 껍질을 깨고”라고 되뇌인다. 한 공중파 TV 애니메이션을 위한 곡에서도 “절대 뒤를 돌아보지마 앞만 보며 날아가야 해 너의 꿈을 비웃는 자는 애써 상대하지마, 변명하려 입을 열지마 그저 웃어 버리는 거야 아직 시간이 남아 있어 너의 날개는 펴질 거야”라며 자신의 꿈을 잊지 말고 전진하라는 주문을 왼다. 이 가사들은 자신의 길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기 마련인 젊은 대학생을 위한 주술이자, 스스로의 꿈을 위한 다짐이었다. “약속 헌신 운명 영원 그리고 사랑, 이 낱말들을 난 아직 믿습니다”라고 고백했듯이 신해철은 대의와 큰 이야기를 믿는 80년대의 주체였다. 중심을 상실한 포스트모던 90년대에게 87학번인 그는 확신을 가진 운동권 선배였다. 그래서인지 그의 팬덤은 스타의 일거수일투족을 뒤좇는 것과는 달랐다. 팬들은 그를 믿음을 전하는 교주로 여겼다. 무대를 벗어난 그의 발언에 귀기울이는 이가 많았던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그러나 90년대는 마냥 이어지지 않았고, 그의 팬들도 결혼을 하고 아빠와 엄마가 됐다. 꿈은 과거의 일이 됐고 현재는 현실이 차지했다. 장례식에서도 울려퍼진 ‘민물장어의 꿈’은 스스로를 다잡기는 하지만 더 이상 자신의 길을 자신 있게 걸어가라고 말하지 않는다. “저 강물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다가,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라고 말할 뿐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날, 넥스트 시절의 대표작을 비롯해 그가 남긴 음반은 거의 모두 절판 상태였다. 놀랍게도 한동안 신해철과 넥스트의 음반은 구할 길이 없었다. 엘피와 테이프와 씨디가 공존하며 음반이 가장 많이 팔리던 때에 활동했고 음반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전력을 다했으며, 진정한 팬이라면 음반을 사야 한다고 서슴치 않고 말했던 그였음을 감안하면 가혹한 일이다(현재 주요 음반이 재발매 준비중이다). 탁월했던 뮤지션의 때이른 죽음은 한 시대의 정서와 이를 담는 매체가 이렇게 과거의 일이 됐음을 새삼 알려준다. 그 역시 그 시절의 음악이 그때에만 가능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젊음을 자신의 음악을 통해 기억해줘 고맙다고 한 신해철의 명복을 뒤늦게나마 빈다.

박정현 건축평론가ㆍ도서출판 마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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