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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현대판 소작제

입력
2014.11.11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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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시대 토지 관계는 주인-마름-소작농의 3단계로 이루어져 있었다. 주인을 위해 경작은 소작농이, 관리는 마름이 책임졌다. 요즘 자본주의에 이런 구도를 대입하는 학자들이 있다. 콜린 메이어 옥스퍼드대 교수는 저서 ‘왜 우리는 기업에 실망하는가’에서 “하층계급이 지주계급에 복종하는 잘 짜인 계층 구조는 오늘날 기업의 모습으로 위장하여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다. 주주가 지주를, 펀드매너저ㆍ사모펀드 투자자가 토지대리인을 대체했고, 노동자가 토지를 경작하는 대신 금고를 채워주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 저널리스트 츠츠미 미카의 저서 ‘주식회사 빈곤대국 아메리카’는 대형 식품업체에 점령당한 미국의 농장을 ‘주식회사 노예농장’으로, 영세 농장주를 ‘현대판 노예’로 규정한다. 양계장을 운영하던 농부들은 샌더슨팜스와 같은 미국의 4대 닭고기 업체들의 꼬임에 넘어가 노예계약을 체결해 빚만 잔뜩 지고 결국은 노예상태로 전락한다. 샌더스팜스 등 대형 식품업체가 임의로 정하는 계약내용에 대해 농장주인은 불복할 수 없다. 츠츠미는 이 같은 미국의 농장의 실태를 ‘농노제 부활’이라고 비꼰다.

▦ 우리 사회에도 유사 사례가 있다. 지난해 편의점 점주의 잇단 자살로 ‘현대판 소작제’ ‘노예계약’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편의점 가맹계약의 경우 업계 특수성을 이유로 표준계약서 사용률이 매우 낮다. 편의점은 가맹본부의 요구에 따라 밤샘 영업을 하지만 돈벌이는 시원치 않다. 일방적으로 가맹본부에게 당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가맹본부와 가맹사업자간 분쟁이 빈발했던 도소매업종을 중심으로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으나 실효성은 의문이다.

▦ 얼마 전에는 자영업자의 대출이 큰 폭으로 늘어났다는 통계가 잡혔다. 5대 시중은행의 자영업자 대출잔액은 2010년 말 94조원에서 올해 10월 말에는 134조원까지 급증했다. 별다른 기술이 없는 퇴직자들은 자영업에 뛰어든다. 특히 가맹점 형태의 창업이 많다. 이들은 대부분 창업 이후에도 ‘갑(甲)질’을 하는 가맹본부의 횡포에 시달린다. 그러다 보니 빚은 느는데 매상은 줄고 있으니 소작농이나 다름없다는 한탄이 나온다. 앞으로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줄을 이을 것이라 걱정스럽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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