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꽁무니 쫓아갔다. 남녘으로 향하는 단풍무리가 충북 옥천, 물 맑은 천변에서 숨 고르고 있었다. 가장 예쁜 가을도 여기서 만났다. 게으름 부리는 가을, 부둥켜안고 한바탕 놀고 나니 떠나 보내기가 좀 수월해진 듯 느껴졌다. 가까이 있어도 그리워지는 것들 참 많은 요즘. 가을도 그렇다. 한복판에 있어도 늘 그립다. 훌쩍 가버리기 전에 한 번 더 마주하고 싶다면 옥천으로 간다.
● 우암 송시열의 애를 태운 절경…부소담악
부소담악은 먼저 본다. 단풍무리 내려앉은 자태가 어찌나 고운지 지금 안보면 후회할지 모를 일이다. 군북면 소재지 지나고 환평리 넘어가면 추소리다. 이 마을 들머리 우람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서 있는 언덕이 서낭재. 여기서 마을 반대편으로 난 조붓한 오솔길을 따라 800m 쯤 가면 부소담악 능선에 올라타게 된다.
마을 앞 감입곡류(구불구불 골짜기 따라 흐르는 하천) 가운데로 산줄기처럼 뻗은 지형이 그 유명한 부소담악이다. 감입곡류는 서화천. 충남 금산에서 발원해 옥천 서북쪽 지역의 준봉들 사이를 굽이굽이 돌아 대청호에 이른다. 물길과 준봉이 만드는 절경은 옥천 출신 우암 송시열의 애를 태웠다. 댐 생기고 대청호 형성되면서, 막힌 서화천 물길이 빚어 놓은 독특한 지형이다. 수면 위로 솟은 능선 아래는 원래 경사 완만한 밭이었는데, 물이 차면서 능선 끝부분만 남았다. 너비 20m, 높이 40~90m의 능선이 물길 복판으로 약 700m나 뻗어있다. 사계절 언제든 풍광 장쾌하지만 단풍 뒤덮이니 화려하기가 으뜸이다.
서낭재에서 부소담악까지는 걷는다. 절반은 폭신한 흙길이고 절반은 낙엽 소복하게 쌓인 숲길이다. 장승공원 지나면서부터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다. 추소정에 올라 물길 너머 한갓진 시골마을 음미하고 아늑한 솔숲에 에워쌓인 부소정에 앉아 청명한 바람도 맞는다. 가을이 그려놓은 수채화가 이렇게 곱다. 좁다란 능선 양쪽은 물, 능선은 어디 가서 구경 못할, 바위가 만든 천연의 다리가 된다. 옛사람들 배타고 즐기던 풍류를 두 다리로 걸어 체험한다.
돌아 나올 때는 장승공원에서 황룡사 앞으로 난 길을 따른다. 절반은 나무 데크 길이고, 절반은 콘크리트 길이다. 나무에 가리지 않으니 시야가 트이고 풍경이 더 잘 보인다. 미동 없는 수면을 가르는 물새들의 교태를 즐기고 멋들어진 갈대와 단풍의 조화도 구경한다.
부소담악은 안에 들어서 보면 정겹고, 한발 떨어져 바라보면 장쾌하다. 황룡사 옆에서 고리산(환산) 등산로가 시작되는데 이 산에 오르면 부소담악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황룡사에서 정상까지 편도 2.2km, 2시간 잡으면 넉넉하다. 이 보다 시간 덜 드는 포인트도 있다. 추소리 뒷산인 성인봉 중턱인데, 사진 애호가들이 촬영을 위해 종종 찾는다. 서낭재에서 황룡사 방향으로 2차선 도로를 따라 50m 내려오면 왼쪽으로 좁고 희미한 오솔길 보인다. 이 길을 따라 20~30분쯤 오르면 닿는다. 시간 덜 걸리는 대신 경사 제법 가파르니 오르고 내려올 때 주의가 필요하다. 일단 올라서면 그 장쾌함에 눈이 호강한다. 숨 헐떡거리며 오른 수고가 싹 가신다. 준봉 사이를 ‘S’자로 휘어지며 흐르는 물길이나 이 가운데로 뻗어있는 능선이 거대한 용의 움직임처럼 느릿하게 꿈틀댄다. 물길과 능선이 살아있다. 용의 등에 올라탄 단풍은 볕 받아 매끄러운 비늘처럼 반짝인다. 또 아득한 강변마을이 동화처럼 무구하니 가장 예쁘고 싱싱한 가을을 여기서 본다.
● 이지당에 들어 마음 살피고 용암사에서 여래불 알현하다
부소담악에서 서화천 물길 따라 옥천읍 소재지 방향으로 내려오면 이지당이다. 차로는 약 20분 거리. 고요하게 흐르는 물길 옆 너럭바위 언덕에 단아하게 자리잡은 서당이 이지당이다. 마음 참 평온해지고 풍경 소박하니 시간 나면 들른다. 다듬지 않은 나무를 기둥으로 삼은 건물도 아름답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유학자인 조헌이 지방의 영재를 모아 이지당에서 학문을 논했다. 원래 각신마을 앞에 있어 각신서당이라 했는데 나중에 조헌을 존경한 우암이 ‘이지당(二止堂)’이라고 현판을 써 달았다. 조헌은 임진왜란 때 옥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청주를 되찾고 금산전투에 나아가 700여명의 의병과 함께 생을 마감한 인물. 그날의 치열함이 바람에 실려 전해지는 듯 한데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극락보다 평온하니, 속절없다. 물소리 더 없이 맑은데 ‘그날’ 기억하라고 단풍은 이토록 붉다.
먹먹한 마음 달래려 용암사로 간다. 신라 진흥왕 13년(552년)에 의신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는 절인데 이곳에 독특하게 생긴 마애여래입상이 있다. 옥천읍 장령산 기슭이다. 천불전 뒤로 난 계단을 올라서면 마애여래입상이 나타난다. 두 발을 벌리고 연꽃 대좌에 서 있는 형상이 큰 바위에 새겨져 있다. 높이가 3m쯤 된다. 신라의 마지막 태자인 마의태자가 새긴 불상이라고 전하는데, 미소 머금은 얼굴이 형식적이지만 볼수록 정이 간다. 이 얼굴이 마음의 긴장 풀어준다. 눈은 가늘고 길며, 입은 작고 코는 도드라졌다. 어깨는 넓은데 하체는 늘씬하고 팔은 단정하게 몸에 붙였다. 마애여래입상을 새긴 바위는 단풍처럼 붉은 색을 띠니 이것도 신비하다. 용암사는 장쾌한 일출과 운해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이름났다. 준봉 아래로 들판이 아득하다. 동쪽 암반 위에 세워진 쌍삼층석탑도 찾아본다. 고려 때의 것으로 추정되는 보물(1388호)이다. 약 4m 높이의 탑인데 탑신이 아주 매끈하다.
● ‘향수’의 시인 정지용의 고향
옥천에 가면 아름다운 언어로 기억되는 시인 정지용을 떠 올린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으로 시작되는, 가수 이동원과 성악가 박인수가 노래로 불러 익숙한, ‘향수’의 시인, 그가 옥천에서 났다. 시 속에 등장하는 풍경은 시간에 밀려 변해버렸지만 그 정서만은 여전히 이 땅을 맴돌고 있다. 정지용은 1902년 옥천읍 하계리에서 출생했다. 일본 유학중이던 22세에 고향을 그리는 절절한 마음을 담아 ‘향수’를 썼다.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 홀연히 집을 나간 후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죽음에 관해서는 소문만 무성하고 확실히 밝혀진 것은 지금도 없다.
옥천읍(구읍)에 그의 생가가 복원돼 있다. 그 옆에 문학관도 있다. 금강을 경유하는 자전거 코스인 ‘향수 100리길’도 여기서 시작된다. 툇마루에 앉아 볕을 쬐고 우물이 있는 마당도 거닐어본다. 초가는 단출한데 거닐며 느끼는 평온함은 큰 산만큼 묵직하다. 고향은 이런 거다. 언제 찾아 들어도 마음 편안해지는 곳. 그의 아름다운 시(詩)와 정서가 흐르는 이 작은 초가에 들면 꿈에 그리던 고향을 품게 된다.
어둑해지면 옥천성당으로 간다. 1956년에 지어진 성당인데 파스텔톤 외벽이 예뻐 찾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저녁 무렵 가로등 켜지면 은근한 멋이 훨씬 더 하다. 앞마당에서 읍내도 내려다보고 단풍 든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가을밤의 정취도 만끽한다.
단풍 붉고 고운 풍경 많은 옥천, 이 땅을 밝고 섰는데도 자꾸 그리워지니 옥천은 가을을 쏙 빼닮았다.
● 여행메모
경부고속도로 옥천IC로 나와 국도 4호선 타고 군북면 소재지까지 간다. 이백삼거리에서 철길과 경부고속도로 아래를 지나는 굴다리 통과하면 환평리 지나고 부소담악이 있는 추소리까지 갈 수 있다(현재는 이백삼거리 굴다리가 공사중이라 증약리로 돌아가야 한다). 부소담악으로 드는 길은 두 갈래다. 서낭재 뒤로 난 길과 황룡사 앞으로 난 길이다. 장승공원에서 두 길이 만나니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길을 달리하면 효과적이다. 부소담악을 구경하고 이지당, 정지용생가, 옥천성당, 용암사 순으로 돌아보면 편하다.
옥천 구읍에 민물고기를 뼈째 갈아 만든 어탕국수, 민물고기를 돌려 담아 조린 ‘도리뱅뱅이’ 등을 내는 식당이 많다. 옥천군청 문화관광과 (043)730-3412
옥천=글ㆍ사진 김성환기자 spam001@hks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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