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등 아킬레스건 지키기에 전자·유화 등 양허 대상서 제외
중국은 자국 브랜드 타격 우려, 한국은 중국산 유럽차 유입 차단
30개월 간의 줄다리기 끝에 실질 타결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은 역대 가장 낮은 수준의 FTA로 기록될 전망이다. 중국은 제조업, 우리는 농축수산업을 지키기 위한 전략으로 맞서며 결과적으로 ‘자유무역’과 ‘자국 산업보호’라는 모순된 목표가 어색하게 동거하는 협정이 되고 말았다.
● 지킨 것과 잃은 것
FTA의 핵심인 상품 분야의 경우 우리는 1만2,232개, 중국은 8,194개를 놓고 협상을 벌였다. 중국은 품목수 기준 71%(5,846개), 수입액으로는 66%(1,104억 달러)에 해당하는 상품을 10년 이내에 관세를 철폐하는 일반품목군에 넣어 문호를 열었다. 하지만 나프타 아스팔트 윤활기유 프레스금형 가정용정수기 등 15~20년 이내 관세를 없애는 민감품목군에는 1,582개를 포함시켜 보호했다. 게다가 우리 화학업체들의 주력 품목인 파라자일렌(PX) 텔레프탈산(TPA) 에틸렌클리콜(EG) 굴삭기 등은 양허하지 않는 초민감품목군에 넣어 철저히 지켰다.
반면 우리는 원유 나프타 음향기(이상 즉시철폐), 의료기기 금속절삭기계(5년 이내 철폐), 냉장고 세탁기 화장품(10년 이내 철폐) 등을 조기철폐 품목으로 내놓고, 농축수산물을 보호했다. 농축수산물 양허 비율은 미국이나 유럽연합(EU) 등과 앞서 체결한 12개의 FTA 중 최저 수준이다. 한미와 한EU FTA는 우리가 양허에서 제외한 농축수산물이 16개에 불과했지만 한중 FTA에서는 614개다. 이렇게 농축수산물을 지키려다 보니 10년 이내 관세가 없어지는 조기 관세철폐 비율도 품목 수 기준으로 우리가 79.2%, 중국이 71.3%로 이전 FTA들과 비교해 가장 낮다. 한미와 한EU FTA는 이 비율이 거의 100%에 육박했다.
● 서비스시장 유리한 고지 선점
중국은 한중 FTA를 통해 ▦법률(상하이 자유무역지대 내 중국 로펌과 합작) ▦건축과 엔지니어링(한국 실적 인정) ▦유통(취급금지품목 완화) ▦환경(하수처리서비스 개방) ▦엔터테인먼트(한국기업 49% 지분 참여 허용) 분야를 개방하기로 했다.
통신 분야도 중국 FTA 사상 최초로 독립 장으로 다뤄 별도 협정문을 체결한다. 중국 통신시장 규제 장벽이 낮아져 국내 통신사업자들의 진출이 탄력을 받게 된 것이다. 중국은 통신서비스시장을 일단 자국법에 준해 개방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중국은 이전까지 서비스의 하나로 다뤘던 금융 분야 역시 별도 장으로 수용하며 금융 분야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무분별한 투자자-국가소송제(ISD)를 막는다는 명목을 앞세워 ISD 제기 대상 안건을 양국 금융당국이 사전에 협의하고, 금융서비스위원회설치 등 금융 당국간 별도 협의 채널도 만들기로 해 투자자 보호 장치는 후퇴했다.
서비스 개방의 경우 일단 가능한 분야를 열거하는 ‘포지티브(positive)’ 방식 자유화에 양국이 합의했고, 후속 협상을 통해 미개방 분야만 정하는 ‘네거티브(negative)’ 방식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중국은 네거티브 방식의 FTA 협상이 처음이라 내부적으로 법 개정 등이 필요하다. 우리 협상팀은 완전한 개방은 아니지만 우리 기업이 경쟁국들보다 중국 서비스 시장에 먼저 진출하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밖에 ▦중국 주재원 최초 2년 이상 체류 및 복수비자 발급 부여 ▦700달러 이하 물품 원산지증명서 면제 ▦48시간 이내 통관 원칙 등도 합의됐다. 타결 직전까지 최대 쟁점이었던 품목별원산지결정기준(PSR)은 막판에 합의가 이뤄졌다.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에 대해서는 양국이 “지속 가능한 어업협력을 통해 관련된 문제를 해결해 나가도록 한다”는 다소 모호한 문구로 합의해 향후 계속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국은 한미와 한EU FTA 타결 시 역외가공지역에서 제외된 개성공단 제품도 FTA 발효 즉시 한국산으로 인정하기로 해 눈길을 끌었다.
● 한중 모두 몸 사린 협상
한중 FTA 협상에는 중국도 우리만큼 위기의식을 갖고 뛰어들었다. 2003년 홍콩과의 첫 FTA를 시작으로 12건의 FTA를 체결한 중국이지만, 제조업 위주의 수출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게다가 지난해부터 일본의 부진으로 우리가 중국의 최대 수입국이 돼 중국 입장에서도 자칫 자국 제조업을 통째로 날려버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컸다. 중국이 처음으로 22개 별도 장을 채택한 것도 이런 이유다.
우리는 쌀로 대표되는 농축수산물을 ‘아킬레스건’으로 안은 채 협상에 돌입했다. 정부는 한중 협상에서 ‘상징성이 큰 쌀은 절대로 주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대응했다. 대외적으로 공표를 안 했지만 중국 역시 우리가 쌀을 지킨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12건의 FTA를 체결하는 동안 한 번도 쌀시장을 개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로의 약점과 강점을 낱낱이 알고 임한 협상이라 가장 수혜를 볼 것으로 기대됐던 전기전자, 석유화학 등 제조업 중 상당 품목이 양허 대상에서 제외됐고, 중국은 우리 농축수산물 시장을 기대보다 많이 뚫지 못했다.
자동차의 경우는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양허 대상에서 제외됐다. 중국의 수입차 관세율은 22.5%, 우리는 8%로 자동차시장 개방 시 초기 타격은 중국이 클 수 있다. 반면 장기적으로는 BMW 폭스바겐 등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에서 만든 차가 국내로 유입될 우려가 있었다.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이미 중국 공장을 짓고 생산ㆍ판매 체제를 구축해 중국으로 수출하는 물량이 4만8,000여 대에 불과하다는 점도 협상 시 고려 대상이었다.
협상 대표단을 이끈 우태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실장은 “우리 기업들이 현지화를 추진한 업종들보다는 스포츠용품과 의료기기, 부품산업 등 중소기업의 진출에 협상의 초점을 맞췄다”며 “경제적 이익만 따지는 FTA가 아니라 동북아 평화에 이바지하는 게 한중 FTA의 의미”라고 말했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