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머릿속에 아이디어 킬러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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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머릿속에 아이디어 킬러가 살고 있다

입력
2014.11.10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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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라이터 김민철씨

뜨개질ㆍ사서삼경ㆍ맹자ㆍ도자기...

무엇이든 경험ㆍ관찰하는 습관으로

자신감 키워 새싹들 지켜내

창조의 또 다른 화두인 질투와 시기

이겨내는 방법 래퍼와의 대화 기대를

카피라이터 김민철씨에게서 들은 이야기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이디어는 함께 물을 주고 키우는 나무 같은 것”이라는 말이었다. 카피라이터들은 함께 일한다. 한 사람이 아이디어를 꺼내 놓으면 다른 사람이 그 아이디어에 살을 붙인다. 어떤 살은 떼어내고, 또 어떤 살은 붙이고, 아이디어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간다. 여기에 중요한 창작의 비밀이 숨어 있다.

김민철씨는 그 과정을 ‘나무에 물을 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사람들은 ‘좋은 아이디어들은 처음부터 위대했을 것’이라고 착각을 해요. 회의실 책상 위에 올라가는 아이디어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에요. 그냥 ‘괜찮다’ 정도죠. 그럼 그 아이디어에 물도 주고, 영양분도 공급해주고, 햇볕도 쪼여주고, 아이디어가 넘어지려고 하면 지지대로 받쳐주고, 그렇게 키워나가요. 우리가 본 위대한 생각들은 다 완결형들이에요. 머릿속에 떠오른 새싹을 죽일 필요가 없어요.”

머릿속에 떠오른 새싹을 죽이지 않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소심한 우리들의 머릿속에는 막 지상으로 솟아오르려는 새싹 생각들의 머리통을 두더지 게임처럼 쥐어박는 ‘새싹 킬러’들이 살고 있다. 새싹 킬러들은 어떤 생각이든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거대한 망치로 무자비하게 새싹을 후려갈긴다. “겨우 이 정도야?” “확실해?” “아닌 것 같지 않아?” “남들이 아마 비웃을 거야.” 이런 말을 달고 살면서 망치를 들고 머릿속을 휘젓고 다닌다.

새싹을 죽이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그 믿음을 키울 수 있을까. 생각을 조금 바꿔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문제가 주어지면 정답을 알기 위해 노력한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아직 정답을 찾지 못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다. 노력 없인 답이 없다. 하지만 다른 가능성은 없을까. 어떤 경우엔 이미 정답이 나왔는데 계속 노력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답을 저기 위에다 적어놓고 다른 답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감’ 혹은 ‘직감’이다. 김민철씨가 회사에서 배웠다는 것도 바로 감이다.

“오늘은 뭘 또 배우게 될까, 그런 생각을 하면 신날 때가 많아요. 박웅현 팀장님이 그런 말 자주 해요. ‘선택도 중요하지만 그 선택을 옳게 만드는 과정도 중요하다’고요. 자신의 감을 믿고 선택하지만 인간인데, 어떻게 고민을 안 하겠어요. 남들이 다 반대해도 내 감을 믿고 ‘이게 내 답이야’라고 얘기했으면 그걸 정답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하는 거죠. 허공에 떠 있는 아이디어가 땅에 붙을 수 있게 받침대를 만들어주는 과정이 더 중요해요.”

김민철씨는 선택과 감에 대한 이야기를 한 다음 나에게 알기 쉽게 소설 쓰기에 비유를 해주었다. 소설의 첫 번째 문장을 쓰고 난 후 두 번째 문장을 ‘선택’할 때의 기준이 바로 ‘어떻게 하면 첫 번째 문장을 돋보이게 할 것이냐’가 아니냐는 것이다(어, 어떻게 알았지. 혹시 김민철씨가 몰래 소설을 쓰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두 번째 문장은 첫 번째 문장을 책임지기 위해서 선택된다는 얘긴데, (어떤 소설가들은 반대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김민철씨의 생각에 거의 동의한다. 소설을 쓰지 않는 어머니는 매번 새로운 소설이 나올 때마다 “아이고, 아들, 이렇게 많은 종이에다 글자를 채워 넣느라고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라며 안쓰러워 하시지만 “일단 첫 문장만 쓰면 그렇게 어렵진 않아요. 그 다음부터는 첫 문장을 책임지기 위해서 노력만 하면 되거든요. 그것도 물론 힘든 일이지만 창작의 고통이라기보다 책임의 고통이 더 크다는 생각도 들어요. 어머니, 그건 말하자면….”이라고 말하지는 않고 혼자 마음 속으로만 생각한다.

한 줄의 카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각의 깔때기 그림으로 설명해보겠다. 우선, 수많은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C라는 생각, B라는 생각, A의 문장, F라는 노래, 8이라는 사람의 말…, 이 모든 것이 한 줄의 카피라는 깔때기를 통과하는 것이다. 김민철씨가 강조하는 것은 한 줄의 카피 뒤에 이어지는 과정이다. 한 줄의 카피가 세상에 발 딛고 서 있게 하려면 지지대를 세워줘야 한다. C라는 생각이 다시 재활용되기도 하고, 의외의 생각인 ㅈ이 다시 떠오르기도 한다. 카피 이전의 작업이 감으로 하는 것이라면 카피 이후의 작업은 논리적인 작업이다. 논리적인 작업에서 더 많은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가 많다.

생각의 새싹을 죽이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고 했다. 감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믿음과 감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창작을 앞둔 수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이렇게 묻고 있을 것이다. “이게 좋은 생각일까.” “이 소재로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이걸로 그림을 그리는 게 좋을까.” “이걸로 광고의 핵심 아이디어를 만들 수 있을까.” 어마어마한 아이디어로 소설을 쓰는 스티븐 킹은 자신의 창작론 ‘유혹하는 글쓰기’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이 세상에 ‘아이디어 창고’나 ‘소설의 보고’나 ‘베스트셀러가 묻힌 보물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소설의 아이디어는 그야말로 허공에서 느닷없이 나타나 소설가를 찾아오는 듯하다. 전에는 아무 상관도 없던 두 가지 일이 합쳐지면서 전혀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설가가 해야 할 일은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막상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그것이 좋은 아이디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는 ‘좋은 아이디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소설가의 근육을 키우는 피트니스 가이드 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아이디어를 알아차리는 능력’은 소설뿐 아니라 다른 모든 장르에도 필요한 능력이다.

결국 직관이란 경험과 관찰에서 나오는 것이고 경험과 관찰의 습관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창작에 필요한 것은 ‘영감’이지만 영감을 만들어내는 것은 경험과 관찰이고, 경험과 관찰을 만들어내는 것은 습관이다.

카피라이터 김민철씨에게는 ‘배우는’ 습관이 있다. 배우는 습관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됐다. 엄마한테 용돈을 받으면 서예 학원과 영어 학원에 혼자 알아서 등록했다. 뭘 배운다기보다 무엇이든 배우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에너지로 변했다. 뜨개질을 배웠고, 사서삼경과 맹자를 배웠고, 도자기를 배웠다. 무엇이든 배우고 싶다는 생각은 회사에 와서도 계속 됐다. 광고 관련 학과를 졸업하지 못한 탓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팀장님의 수업에 들어가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팀장님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거기 학생들은 우리 회사 회의실에 와보는 게 꿈이야.”

김민철씨는 아무 대꾸도 못하고 그때부터 열심히 회의실에서 광고를 배우고 있다. 회사 일이 끝나고 퇴근 시간이 되면 곧바로 맹자를 배우러 가고, 도자기를 배우러 간다. 4년째 배우고 있는 도자기 수업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작년부터 물레를 이용해서 만들고 있는데, 중심 맞추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몇 달 전에 선생님이 와서 ‘다시 보여줄게요, 잘 봐요’하고 처음부터 설명을 해주는데 갑자기 알겠더라고요. 아, 알겠어요, 알겠어. 선생님한테 ‘와, 저는 10개월 동안 이것도 모르고 물레를 돌린 거네요’라고 했더니 선생님이 ‘10개월 동안 물레를 돌려봤기 때문에 이걸 깨닫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도자기를 만드는 게 제 일에 직접적인 깨달음을 주지는 않겠지만 일할 수 있는 체력을 키워주는 것 같아요.”

어떤 경험은 창작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어떤 경험은 창작에 간접적인 영향을 준다. 도움이 되지 않는 경험이란 없다. 그걸 도움으로 받아들이냐, 아니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김민철씨의 팀에는 다양한 팀원이 있다. 평소의 습관도 다르다. 김민철씨는 책을 보고 공연을 보고 다양한 것을 배운다. 어떤 팀원은 광고 영상을 수집해서 그걸 계속 들여다본다. 어떤 팀원은 책 읽는 걸 무척 싫어하지만 (팀장님이 낸 책도 읽지 않는 용자다!) 회의 때마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그렇게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팀의 호흡이 생겨나는 것이다.

지난 회에 김민철씨가 질투 없애기 비법을 알려줬다고 했는데, 그건 좀더 중요하게 다뤄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회의실에서는 하나의 아이디어를 공동의 재산으로 여기고, 함께 물을 주어 키워낸다고 했는데, 그런 완벽한 회의실에서도 질투가 있을 것이다. 인간은 남과 달라야 하고, 남보다 더 나아야 하는 존재들이다. 나는 창작자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무시무시한 적이 바로 ‘질투’와 ‘시기심’이라고 생각한다. (둘은 엄연히 다르다.) 어떤 질투와 시기심은 창작자에게 커다란 동기부여를 주는 반면, 잘못된 질투와 시기심은 창작자를 뿌리째 썩게 만든다.

김민철씨가 화두를 던진 질투 이야기를 하기 위해 가장 솔직한 장르를 찾아보기로 했다. 질투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장르, 가장 원초적인 장르가 뭘까. 나를 그대로 드러내며 나 자신에게 가장 충실한 장르가 뭘까. 나는 그게 ‘힙합’이라고 생각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드는 영화가 스테이크의 ‘웰던(well-done)’이라면 힙합은, 그 중에서도 랩은 가장 ‘레어(rare)’한 장르가 아닐까. ‘나를 표현하는 방법’과 ‘상대를 존중하는 법’과 ‘질투와 시기를 이겨내는 방법’을 (내가 생각하는) 한국 최고의 래퍼에게 물어보았다. 그 래퍼의 이름은…, 이런, 원고량이 넘쳐서 다음 회에 계속.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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