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쁜 놈아. 거기 서지 못해. 오늘 죽어봐라.” 8년 전 처가 근처로 이사하고 월요일 아침 출근하다 40대 여성에게 봉변을 당했다. 자기 집 대문 앞에 서 있던 여성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아무 이유 없이 욕설을 퍼부으며 폭력을 가했다.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 대처도 못하고 출근길에 두들겨 맞고 나니 화가 치밀었다. “나한테 왜 이러시는 거예요?” 라고 묻자 여성은 “너도 남자잖아. 남자들은 다 도둑놈들이야. 너 지금 여자 만나러 가는 거지?”라며 다시 주먹을 쥔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애가 많이 아파서. 한번만 봐 주세요.” 40대 여성의 어머니로 보이는 80대 노파가 내 손을 잡고 사과한다. 아프다는데 뭐라 할 수도 없고. 가던 길을 재촉하는 내 등 뒤로 노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계속 그러면 다시 병원에 가야 해. 정신 좀 차려라.”
퇴근 후 집사람에게 아침에 일어난 이야기를 했더니 이렇게 말한다. “아, 그 아주머니 이 동네에서 오래 사신 분이야. 나랑 나이가 같을 거야.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남편이 바람 피워 이혼한 후 정신이 이상해졌어. 불쌍한 사람이야.”
아주머니가 무서워 지하철역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인 그 골목길을 버리고 다른 길을 통해 출근한지 반년이 됐을까. 무심코 아주머니가 사는 집 쪽으로 발길을 향했는데 그 집 앞에 2, 3명의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 있었다. “아이고, 정신 나간 딸을 놔두고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어제 딸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고 하던데. 아버지도 암 환자인데 저 집 참 딱하게 됐네.”
조현병(정신분열병)을 앓고 있는 아주머니는 6개월 단위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있다. 정신보건법에 따라 과거 폐쇄병동으로 불렸던 정신병원 안심병동에서 6개월 이상 입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상태가 호전돼 퇴원해도 치료를 계속할 수 없는 아주머니는 다시 정신병원에 입원을 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이런 환자들이 아침에 병원에 가서 치료와 상담, 관련 치료 프로그램을 받고 오후에 집으로 돌아오는 ‘낮병원’이 있었지만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낮병원을 운영했던 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현 수가체제에서는 도저히 병원을 운영할 수 없어 문을 닫았다”고 했다. 우리나라 18세 이상 성인 6명 중 1명이 경험하는 정신질환인데 다시 사회로 돌아와야 하는 이들이 지속적인 치료를 받지 못해 사회와 격리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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