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세포 제거 동시 인체 기능 보존
섬세한 기술과 경험 요구돼
수술시간 짧아져 고령자도 가능
이 분야 국내 최다 수술 기록
이동현 이대목동병원 비뇨기과 교수(49)는 방광암 환자에게 인공방광을 만들어 주는 수술을 할 때 방광 절제를 흔한 방법인 앞쪽부터 하는 게 아니라 뒷쪽부터 메스를 들이댄다. ‘포스티어리어 어프로치(posterior approach)’라 불리는 이 술기(術技)는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힌 신경의 손상을 줄임으로써 환자들이 수술 후에도 성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한다. 이 교수는 또 인공방광에 요관을 연결할 때 이음새 부위의 장을 뒤쪽으로 살짝 틀어줌으로써 체크밸브(check valve)의 원리에 따라 소변의 역류를 차단한다.
인공방광 수술은 방광암으로 기능을 잃은 방광을 떼낸 뒤 환자의 소장을 이용해 대체 방광을 만들어 주는 치료법이다. 암세포가 방광 조직의 가장 안쪽인 점막층을 지나 근육층이나 장막층까지 깊숙이 침범한 경우 택하는 고육책이다. 인공방광을 위한 방광전절제술은 방광 뿐 아니라 주변 조직을 대거 절제해내는 큰 수술이다. 방광 절제에 앞서 암세포가 번지는 경로인 임파절을 가장 먼저 긁어낸다. 남성의 경우 전립선ㆍ저정낭ㆍ정관(일부)을, 여성의 경우 자궁ㆍ난소(한쪽)ㆍ질(3분 2가량)을 잘라낸다. 이어 환자의 소장을 60cm가량 잘라 인공방광을 만든 뒤 요관을 연결하면 끝이다. 절제 범위가 넓은데다 전립선, 방광, 요관, 발기신경 등이 뒤얽힌 복잡한 비뇨기를 손대는 고난도 수술이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리고 출혈의 가능성 등 위험이 상존한다.
그래서 인공방광 수술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술기가 발달하지 않았던 예전에는 수술이 10시간이 걸렸다. 수술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망률 수치가 올라간다. 이에 따라 70세 이상 고령자나 당뇨, 고혈압 등 만성질환자들에게 이 수술은 금기였다. 술기가 좋아져 요즘은 수술시간이 4시간 정도로 줄어 들었다. 워낙 고난도 수술이라 아직까지도 이 수술을 하는 병원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이동현 교수는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인공방광을 하는 것은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다”며 “수술시간이 짧아지면서 회복 속도도 빨라졌다”고 했다.
이 교수는 세브란스병원 연구강사이던 1997년 인공방광 수술을 처음으로 했다. 지금은 국내에서 이 수술을 가장 많이 하는 의사 중 한 명이다. 이 교수의 인공방광 수술법은 이른바 '스튜더 방식'. 이 교수는 이 방식을 조금씩 다듬고 고쳐서 후유증을 줄여나가고 있다. 포스티어리어 어프로치와 체크밸브 원리 도입 등이 대표적 사례다. 그의 인공방광 수술 최단 기록은 2시간50분이다. 이 교수가 몸담고 있는 이대목동병원은 인공방광 수술을 2011년 21건, 2012년 33건, 지난해 40건 시행했고, 올 들어 10월 현재 51건으로 수술 건수에서 국내 최다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암 치료에서 중요한 것은 첫 번째가 암세포의 완전한 제거이고 두 번째가 인체 기능의 보존이다. 암세포 제거를 위해 이 교수는 림프절을 가급적 많이 긁어낸다고 했다. 기능 보존에서 중요한 것은 환자들이 성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신경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다. 신경 보존은 섬세한 술기를 요하는 험로의 연속이다. 예컨대 남성에서 전립선을 감싸고 지나가는 발기신경을 다치지 않고 잘 박리해내기란 쉽지 않다.
이 교수는 수술이 정확해야 한다고 거듭 말했다. 그는 “수술이 정확하지 않으면 피가 나고, 피가 나면 시야가 흐려져 수술이 더 지체된다”고 했다. 인공방광 만들기 자체가 섬세한 손놀림을 요하는 수작업이다. 잘라낸 소장을 이러저리 접고 한땀 한땀 꿰매 공 모양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단 한 번의 잘못된 손놀림이 커다란 환자 피해와 불편함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인공방광 수술을 막 시작한 초보 외과의들은 소변 누출이라는 최대 수치(羞恥)를 맛보지 않기 위해 한순간도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못한다.
방광적출술을 받은 경우 인공방광 수술 이외에 소변주머니를 만들어 주는 또다른 방법도 있다. 방광 적출에 따라 체내 소변이 고이는 장소가 없어지게 되므로 일반적으로 소장을 20cm가량 잘라낸 뒤 한쪽에는 요관을 잇고 다른쪽 끝은 복부 쪽 피부에 연결해 비닐주머니를 만든다. 비교적 안전하면서도 간단한 수술이다. 다만 소변주머니를 평생토록 차고 다녀야 하는데다 소변이 복부 옆으로 새는 경우도 있어 불편함이 따른다.
중앙암등록본부 자료에 따르면 2011년 국내에서 발생한 방광암은 모두 21만8017건(남자 2,847, 여자 702건)이다. 방광암 발생은 남성에서 약 4배 더 잦다. 소변에서 피가 섞여 나오는 혈뇨가 대표적 증상이다. 방광암 위험인자는 노화, 흡연, 화학물질ㆍ방사선 노출 등이다. 머리염색약, 구체적으로 머리 염색 시 착색을 돕는 아닐린계 염료가 방광암의 위험인자라는 보고도 있다. 머리 염색을 자주 하는 미용사들의 경우 일반인에 비해 방광암에 걸릴 위험이 5배가량 높다는 것인데, 이를 근거로 머리염색약이 방광암을 일으키는 직접적 원인이라는 주장은 성급한 결론이라는 지적이다.
방광암은 암세포가 방광 점막에 국한된 표재성, 점막을 지나 근육층까지 침범한 침윤성, 전신으로 퍼진 전이성으로 나뉜다. 암세포의 뿌리가 얕은 표재성은 방광 내시경으로 손쉽게 제거할 수 있지만 잦은 재발이 문제다. 전이암은 전신 항암요법을 고려한다.
인공방광의 수술 대상은 방광에 국한된 암이다. 방광의 층은 가장 안쪽부터 점막층, 근육층, 장막층의 순인데, 점막층을 뚫고 근육층 이상 침범한 경우 인공방광 수술 대상이다. 점막에 국한된 암이라도 상피내암이 심하게 퍼진 경우, 표재성이라도 암세포가 여기저기에 광범위하게 생겨난 경우, 암세포 형태가 ‘마이크로 파퓰러리’인 경우도 인공방광의 적응증이 된다. 마이크로 파퓰러리 암세포는 표재성이라도 금세 침윤성으로 돌변해 다른 장기로 전이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은 한국인 의학자로 비뇨기 암 분야 세계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미국 MD앤더스암센터의 노재윤 교수가 처음으로 밝혔다.
송강섭기자 eric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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