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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중 대주교 "교회, 세상 속에서 약자와 함께해야"

입력
2014.11.1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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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교회가 가장 큰 과제, 사회적 약자·소외계층 아픔과 상실감 안아야

사제, 신자만을 위한 존재 아니다, 변방으로 몰린 이들을 외면할 수는 없어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신임 의장인 김희중 대주교는 교회가 품어야 할 '가난한 자'를 경제적인 빈자로 국한하지 않았다. 사회적으로 고통받거나 소외된 약자 역시 교회가 함께해야 할 이들이라는 것이다.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늘 강조한 '거리로 나가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는 가난한 교회'와도 닿아 있다. 한주형 인턴기자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3)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신임 의장인 김희중 대주교는 교회가 품어야 할 '가난한 자'를 경제적인 빈자로 국한하지 않았다. 사회적으로 고통받거나 소외된 약자 역시 교회가 함께해야 할 이들이라는 것이다.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늘 강조한 '거리로 나가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는 가난한 교회'와도 닿아 있다. 한주형 인턴기자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3)

비서실 수녀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약속 시각보다 1시간 일찍 들이닥친 탓이다. 약속된 시간이 빠듯해 좀더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 걱정 반 기대 반 서두른 길이었다. 허탕칠 각오도 돼있었다.

그때 광주대교구장실 문이 열렸다. 김희중(67ㆍ세례명 히지노ㆍ광주대교구장) 대주교였다. 그는 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기자들에게 자리를 권했다. “들어오세요. 시작합시다.”

7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신임 의장과의 인터뷰는 이렇게 시작됐다. 김 대주교는 부드럽고 인자한 얼굴이었지만 신념을 밝힐 때만큼은 단호함이 배어 나왔다. 세월호 침몰 참사 이후 8개월째 달고 있는 노란 리본 배지가 그것을 방증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8월 방한했을 때 한국의 대주교 중 유일하게 노란 리본을 달고 있던 이도 김 대주교다.

그가 지난달 3년 임기의 주교회의 의장에 선출된 건 의미심장한 결과다. 교황 방한 이후 천주교의 개혁을 바라는 신자들의 열망이 높아진 시기라서다. 주교회의 의장은 교황 선출과 같은 콘클라베 방식으로 가려진다. 과반 이상의 주교들이 참석해 과반 이상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비밀회의가 이어진다. 신자들과 사회의 여론을 모를 리 없는 주교들의 의중은 ‘김희중 대주교’로 모아졌다.

교황 방한 이후 한국천주교회의 과제는 결국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로 수렴될 것이다. 김 대주교는 “가난한 자란 경제적인 빈자만을 뜻하는 건 아니다”라며 “사회적 약자, 시대의 아픔과 함께 하는 가난한 교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년부터 연말에 개인 통장을 ‘0원’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의혹부터 세월호 참사까지 일련의 사태에서 보인 정부의 태도를 두고는 “정부가 신뢰를 잃으면, 국민의 협력이 필요할 때 힘을 얻지 못한다”며 ‘양치기 소년’ 우화를 들어 정부를 에둘러 꼬집었다.

지난달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의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6%가 주교들이 개선해야 할 점으로 ‘사회정의 실천 노력 부족’을 꼽은 것과 관련해서는 “뼈아프게 자성하고 받아들여야 할 결과”라고 말했다.

신임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
신임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

_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신임 의장으로 선출됐는데 예상은 했습니까.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교회 내적으로는 내부 쇄신과 영적 성장을 돕도록, 외적으로는 세상과 함께 소통하고 호흡하는 교회가 되도록 하는 심부름꾼이 되려고 합니다.”

_지금 한국 천주교회의 가장 큰 과제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크게 두 가지로 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권고문인 ‘복음의 기쁨’을 한국 교회가 어떻게 실행할지 머리를 맞대는 것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얘기지요. 교회는 늘 쇄신의 고삐를 늦추지 말고 개혁해야 합니다.”

_그 두 가지가 결국 한 맥락으로 풀이됩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행할 계획인지요.

“우선 주교들부터 내년 수입의 일부분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내놓기로 했습니다. 가칭 ‘프란치스코 통장’입니다. 연말에 주교들의 뜻을 모아 어떻게 쓸 건지 정해 실행할 계획입니다. 성서 말씀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어요. 그런데도 굳이 공개적으로 통장을 만드는 이유는 이런 움직임이 확산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또 일부에서 ‘연말에 개인 통장을 0으로 만들자’는 제안도 나왔어요.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실천하고 있는 신부들도 많고요. 저 역시 새해부터 동참할 생각입니다.”

_교황은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해 행동하는 교회’ 또한 강조하는데.

“넓게 보면 ‘가난한 자’란 경제적인 빈자만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 사회의 소외 계층을 포괄하는 말이지요. 저는 교회가 시대의 아픔과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난한 자로 총칭되는 사회적 약자, 그리고 그들의 상실감, 억울함을 교회가 안아야 합니다. 교황님은 교회가 발에 흙 묻히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어요. 복음은 성당 안에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구현되는 겁니다. 교회가 적극적으로 세속 안에 들어가 약자와 함께 해야 하는 이유이지요.”

김 대주교는 그 말대로 ‘시대의 아픔’을 품어 온 성직자 중 한 명이다. 4대강 사업,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등 논란을 일으킨 정부 정책에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고 현장을 찾아 주민을 위로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엔 진도 팽목항에 “기회가 닿는 대로” 내려갔다. 인터뷰 전날에도 팽목항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미사’를 집전했다.

김 대주교가 성직자의 사회 참여를 왜 중시하는지 궁금했다. 내내 따뜻한 미소가 사라지지 않던 그의 얼굴이 사뭇 진지해졌다. 목소리가 커지기도 했고, 한숨부터 내쉬기도 했다.

_ ‘사회적 약자’에는 강정마을과 밀양 주민 등 정부 정책으로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도 포함될 텐데요. 종교가, 성직자들이 왜 그들과 함께 해야 할까요.

“(주저 없이) 종교인으로서 당연한 일이에요. 생명과 직결된 사안이니까요. 예를 들어 4대강 사업할 때 천주교가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했어요. 생명 보존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기에 그런 것이지요.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도 제주교구의 견해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7월에 태풍 ‘너구리’가 왔을 때 기지 건설 현장 방파제에 설치했던 케이슨(대형 구조물)이 밀려가고 기울었어요. 태풍의 영향을 크게 받는 곳인데, 기지를 짓기에 적절한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민군복합 항구로 만든다는데, 현재 설계상 민간 대형 크루즈선의 접안이 가능한지도 의문입니다. 중국도 경계하고 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외교 안보적인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요. 평화롭게 있는 섬은 평화롭게 놔두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밀양 송전탑 건설도 마찬가지예요. 독일이 ‘탈원자력’을 선언한 이유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방사능 폐기물 관리, 방사능 유출 사고로 인한 피해나 질환을 생각하면 원자력 발전은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_논란 끝에 세월호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제정 과정에서 많은 갈등이 있었는데 어떻게 보는지요.

“세월호 참사는 철저한 인재입니다. 사고 직후 100분이라는 ‘골든타임’ 동안 정부가 대체 무엇을 했느냐는 의혹이 아직도 큽니다. 하다못해 유리창 안으로 보였던 학생들조차 구해내지 못했어요. 이해가 안 되는 일이 너무나 많지요. 특별법이 왜 특별법입니까. 이 모든 걸 밝혀내려면 정상적인 법 체제로는 안될 것 같으니, 현행 법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현행 법을 초월해서 의혹을 풀자는 취지이지요. 그런데도 특별법을 두고 벌어지는 공방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_국가정보원의 선거 개입 의혹과 이를 둘러싼 대통령이나 정부의 태도도 국민의 불신을 불렀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잠시 생각한 뒤) 서로가 진솔해지면 좋을 것 같아요. 잠시 동안 진실을 은폐할 수는 있지만 언젠가는 밝혀집니다. 정부가 한번 얘기한 것은 국민이 백 퍼센트 믿을 수 있는 신뢰가 있을 때 통합이 되는 거지요. 정부 발표를 국민이 ‘당장 발등의 불을 끄려는 임기응변’이라고 생각하는 상황이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양치기 소년 우화를 보세요. 정부가 신뢰를 잃으면, 국민의 일치된 협력이 꼭 필요할 때 국민의 힘을 얻지 못합니다.”

_교회가 동성애자, 이혼 신자를 포용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주교 시노드)의 중간보고서가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 사안을 공개적으로 다뤘다는 것 자체가 큰 진전을 뜻한다고 봅니다. 교황께선 교회가 모든 이를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계십니다. 교리에 비춰 ‘맞다, 틀리다’를 떠나서 ‘사람이 우선’이라는 뜻이지요. 동성애를 교회가 허용한다거나 이혼을 권장한다는 게 아닙니다. 그런 문제로 사회의 변방으로 내몰린 사람을 교회마저도 버릴 수는 없지 않느냐는 거지요. 저 역시 그런 신자를 교회가 최대한 위로하고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함께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고민을 했습니다.”

_한국 천주교회에서도 이 사안에 대한 추가 논의가 있을까요.

“내년 주교 시노드 정기 총회에서 논의될 것이기 때문에 한국 천주교회도 의견을 모아야 할 겁니다. 이번 주교 시노드는 의제를 준비하는 성격이었어요. 내년 정기총회 전에 한국교회의 상황에 맞춰 논의하고 모아진 의견을 교황청에 보낼 것입니다.”

_천주교 신자들이 주교들의 사회정의 실천 노력 부족, 대화와 소통 부족, 독선과 권위주의, 부유하고 안락한 생활을 개선해야 할 주요 사항으로 꼽은 설문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뼈아프게 자성하고 받아들여야 할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저를 포함해 우리 성직자들이 사제품을 받을 때 가졌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해요. 주교들이 그간 사회정의 실천이나 대화, 소통에 대해 최선을 다 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한 면이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일부 성직자들의 모습이 지나치게 권위적이고 독선적으로 비친 것도 마음 아픕니다.”

_11일부터 한일주교교류모임이 열립니다. 본행사에 앞서 한일 주교들이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을 만나네요.

“일본의 주교들이 할머니들을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습니다. 두 나라가 앞으로 화해의 길을 가려면 과거사에 대해 일본의 진솔한 반성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 면에서 보면 일본 정부의 노력이 미흡하지요. 가톨릭 교계에서만이라도 이런 공감대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함께 할머니들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_천주교에서 사제란 어떤 존재일까요.

“하느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를 비우고 헌신하는 사람이지요. 결코 천주교 신자만을 위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 갖고 거리로 나가는 것이지요. 지금도 신부, 수녀들이 순번을 정해 팽목항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당신들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함께 하고 있습니다’라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_왜 사제가 됐나요. 후회한 적은 없나요.

“부모님께서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셨기 때문에, 저도 천주교가 모태신앙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성당에서 살다시피 했지요. 신부님들을 뵈면서 자연스럽게 ‘나도 신부가 되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고교 진학을 신학교로 하면서 결심을 실현했지요. 후회한 적은 없지만 신학교에 다닐 때 편안한 생활에 대한 갈망이나 유혹을 받은 때도 있었어요(웃음). 제가 선택한 삶에 만족합니다. 신자들 앞에 과연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가 하는 반성을 할 뿐입니다.”

_마음에 새기고 있는 기도나 성서 구절이 있나요.

“사제품과 주교품을 받을 때 했던 기도입니다. ‘겸허한 기도와 성실한 노력으로 주님께 의탁하오니 나의 힘, 나의 방패 야훼시여, 한 평생 당신 은총 속에 머물게 하소서’와 ‘주님 뜻대로’입니다. 주님이 제가 걷는 길의 가장 큰 힘이고 방패이십니다.”

_정부에 부탁을 하나 더 하신다면요.

“젊은이들이 시행착오를 해도 좌절하지 않고 일어설 수 있는 사회 분위기와 제도가 마련됐으면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교육 문제가 아주 걱정스러워요. 초ㆍ중ㆍ고는 입시 위주의 교육장으로, 대학은 직업양성소가 돼버렸어요. 모든 게 다 ‘돈’이 중심이 됐기 때문이지요.”

광주=김지은기자 luna@hk.co.kr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신임 의장 김희중 대주교는

단신에 인자한 인상이지만 사회적 논란에 분명한 목소리를 내온 강단 있는 성직자다. 천주교 내에서는 ‘현장을 외면하지 않는 대주교’ ‘합리적 진보주의자’라는 평이 나온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교회일치와종교간대화위원회 위원장,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공동회장을 맡고 있다. 교황청의 그리스도일치촉진평의회 위원, 종교간대화평의회 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1947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광주 살레시오 고교, 대건 신학대를 졸업했다. 1975년 사제품을 받고 이듬해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으로 유학해 박사학위(교회사)를 받았다. 1983년부터 광주 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2002년 광주대교구 금호동성당 주임신부를 지냈다. 2003년 주교품을 받은 뒤 2010년부터 광주대교구장직을 승계해 맡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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