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의의 전당인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는 변한다. 국민들 마음에 들면 신뢰도는 높아지고, 양에 차지 않으면 낮아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신뢰도 변화에 관계 없이 국회는 회의체로서 모든 회의의 모범이라는 역할을 다 해야 마땅하다. 법을 만드는 입법부의 회의보다 수범의 역할을 더 잘 할 수 있는 회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 국회에서 본회의를 시작할 때 국회의장(혹은 부의장)이 “제 ○차 본회의를 개의(開議)한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으로 시급히 고쳐져야 한다. 우리나라 국회에서는 국회 회기 중 본회의를 시작할 때 의장이 개회(開會)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개의(開議)라고 말하고 있으며, 반면에 본회의를 끝낼 때는 “본회의를 산회(散會)한다”고 말하고 있다.
얼핏 봐도 그렇고,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사리에 맞지 않아 보인다. 국회 본회의의 시작에 ‘개의’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국회법 개정을 통해 빨리 바로잡아야 한다.
우리 말 사전을 봐도 회의를 시작한다는 단어는 ‘개회(開會)로 돼있다. ‘개의(開議)’라는 단어는 ‘안건에 대한 토의를 시작함’으로 돼있다. 예를 들어 2014년 10월 29일의 경우처럼 국회에서 대통령 시정연설이 있고 안건 토의가 없는 본회의를 시작하면서 “본회의를 개의한다”고 하면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외국 국빈의 국회 연설, 교섭단체 대표의 연설, 혹은 국회사무처 의사국장의 보고만으로 본회의를 마치고 별도의 안건 토의나 표결이 없는 본회의 때도 “개의한다”고 하면 우스운 꼴이 되는 것이다.
국회가 이처럼 잘못된 표현을 벌써 반세기 넘게 쓰고 있는 것은 처음부터 일본 국회의 국회법을 참고하면서 잘못 들여왔기 때문이다. 일본의 국회규칙 ‘제8장 회의(會議)’란을 보면 제1절은 ‘개의, 산회, 및 회의 연장’이며 이 중 제103조에 ‘회의는 오후 1시에 시작한다’라고만 돼있다. 그러니까 일본의 국회 규칙에도 ‘본회의를 개의한다’는 표현은 없는 것이 분명하다. 어떤 경로를 거쳐 우리 국회법에 ‘본회의를 개회한다’는 표현이 자리잡게 됐는지는 규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국회법 해설집을 찾아보면 본회의 시작을 ‘개의’라고 한 것은 ‘제○차 임시국회(혹은 정기국회)의 개회’와 구별하기 위한 것이라고 구차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또한 사리에 맞지 않는다. ‘제○차 국회의 개회’란 일정 기간 동안 국회가 열린다는 뜻이다. 그날 그날의 회의를 시작한다는 뜻에서의 ‘제○차 본회의 개회’와는 뚜렷이 구별되므로 굳이 ‘개의’라는 단어를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개의’와 ‘개회’로 굳이 구분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국회에는 본회의, 전원위원회, 상임위원회, 특별위원회, 소위원회 등이 있다. 본회의는 개의로, 기타위원회는 개회로 돼 있는데 개회로 법률용어의 통일이 시급하다.
한 가지 더 의견을 밝히고자 한다. 국회의원 배지의 ‘國’자를 이미 한글 ‘국’으로 바꾼 우리 국회다. 그렇다면 이제 굳이 한자 단어를 쓰지 말고 “본회의를 시작한다”, “본회의를 끝낸다”는 식으로 한글 전용을 해도 될 때가 됐다. 한자 단어는 국회법에 한글과 병기(倂記)하면 된다. 국회 사무처나 국회법 담당 상임위에 ‘특별 소위원회’를 만들어 일정 기간 시간을 갖고 면밀하게 검토한 뒤 안을 만들어 국회법을 개정하면 된다.
사실 이 문제의 해결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국회에 오래 근무한 경험이 있고, ‘국회사’ 편찬을 해본 경험도 있는 필자가 지난 몇 해에 걸쳐 의원들에게 여러 차례 이를 설명하고 관심을 촉구했지만 아직까지 성과가 없다. 국회에서 본회의를 시작할 때 쓰는 단어가 잘못돼 있는 것은 하찮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일에 관심을 갖고 빨리 고칠 수 있는 국회가 돼야만 더 크고 중요한 국사(國事)도 잘 할 수 있는 국회가 된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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