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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서의 오션토크] 아라비아 해에서의 상념

입력
2014.11.0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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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의 원천인 바다

죽음은 자연의 순리

바다장으로 자연회귀를

김웅서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책임연구원ㆍUST 교수

아라비아 해. 왠지 신비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신드바드 모험 이야기의 배경으로 인문학적 상상력을 잉태한 바다다. 요즘은 해적이 빈번히 출몰해 위험한 바다가 됐다. 아라비아 해는 유조선들이 중동에서 원유를 싣고 우리나라로 오려면 꼭 건너야 하는 바닷길이기도 하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이곳을 항해하는 선박들에게 해적을 주의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해양실크로드 탐험대가 탄 한바다호에도 만약을 대비해 이 구간에서는 무장요원이 탑승했다. 때마침 대한민국 해군 대조영함이 약 160㎞ 떨어진 곳에서 한바다호를 쫓아 항해하고 있어서 얼마나 안도가 됐는지 모른다.

지난 10월 대한민국 해양실크로드 글로벌 대장정에 나선 탐험대가 인도 뭄바이에서 아라비아 해를 건너 오만 무스카트로 가던 뱃길에서였다. 아침 식사 후 항해하던 배가 잠시 멈췄다. 무스카트 항구에 들어가기로 한 시간보다 조금 앞서가고 있어 시간 조절을 하기 위해서였다. 하얀색 날렵한 몸매에 빨간색 아름다운 부리를 가진 제비갈매기 세 마리가 배위를 몇 차례 선회하다가 사라졌다. 배가 서있다 보니 주변을 얼씬거리는 물고기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제법 큰 방어처럼 생긴 물고기가 배에 접근하기에 사진을 찍었더니 놀라서 쏜살같이 사라져버렸다.

배 좌현에 물에 뜬 새 한 마리가 보였다. 그런데 바닷새가 아니고 육지에 사는 새였다. 메추라기처럼 생겼는데, 바다에 빠져 날개를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살리고 싶은 마음에 선교로 뛰어 올라가 뜰채가 있는지 물었다. 선장, 뜰채를 가지고 온 승조원과 함께 부리나케 제일 아래 갑판으로 내려갔다. 배가 높아 뜰채가 바닷물까지 닫지 않았다. 그새 익사했는지 머리가 물속에 잠긴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조그마한 새가 어쩌다 이 먼 바다까지 와서 물에 빠졌을까? 뜰채는 구했는데 구하려던 새는 구하지 못했다.

바다에 빠져 생명을 잃은 작은 새를 보면서 고귀한 생명을 잃은 세월호 참사가 떠올라 삶과 죽음에 대한 상념에 잠겼다.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마치 유언처럼 하는 말이 있다. 바다가 좋아 한평생 바다를 연구하며 살았으니, 이 다음에 세상을 떠나면 화장해 뼈를 바다에 뿌려줬으면 좋겠다는 부탁이다. 예전에는 화장한 재를 바다에 뿌리는 해양산골, 이른바 해양장 또는 바다장이라고 하는 장례를 불법 행위로 간주했다. 그러나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 유골 가루를 바다에 뿌려도 해양 환경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2012년 정부도 유골을 바다에 뿌리는 것이 불법투기가 아니라고 규정했다.

생명을 갖고 태어난 생물은 죽게 마련인 것이 자연의 순리다.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는 없다. 진시황처럼 불로초를 구하려 헛고생할 필요가 없다. 안타깝고 슬픈 마음이 들겠지만,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니 수명을 다했다면 축복해야 할 일이다. 태어나 열심히 노력해서 이름 석 자 세상에 알렸다면, 굳이 묘를 만들고 이름 새긴 비석을 세울 필요가 없다. 그렇지 않아도 살 땅이 점점 줄어드는데 죽어서까지 넓은 땅을 차지하고 위세부리지 말자. 바다장처럼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는 것이 후손을 위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추세라면 앞으로 2, 3세대만 내려가면 조상의 묘가 제대로 관리될 것 같지 않다.

바다장은 여러 가지로 장점이 있다. 화장해서 뼛가루를 바다에 뿌리면 바닷물의 흐름을 타고 전 세계 어느 바다로든 갈 수 있다. 사후에도 세계를 여행할 수 있으니 좋지 않은가. 자식의 입장에서는 성묘의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다. 고인이 보고 싶다면 세계 어느 바다로든 놀러 가면 된다. 그곳에 그리운 부모님의 체취가 있을 테니까. 세월호 유족 일부도 바다장으로 고인을 모셨다고 한다. 굳이 지금의 바다장례처럼 한 곳을 정해놓고 유골을 뿌리고, 다음에 그곳을 다시 찾을 필요는 없다.

자식들한테는 바다장을 해달라고 쉽게 이야기하지만, 우리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유교사상 때문에 내가 자식 된 도리로 부모님을 그렇게 모신다면 솔직히 고민할 것이다. 우리가 생각을 점차 바꿔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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