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섬유산업의 큰 별 "이상은 높이되 분수에 맞게 정진"
”기업은 종업원 생활의 원천" 노사 사회적 합의에 주도적 역할
비서, 50년된 슬리퍼 버렸다 된통, 사회공헌 앞장서며 본인은 검소
‘화학섬유의 종가’ 코오롱그룹을 세운 주역인 이동찬 명예회장이 8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는 9일 내내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각계 인사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김승연 한화 회장과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정세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이 이날 빈소를 찾았다.
경북 영일군 출신인 이 명예회장은 아버지 이원만 코오롱그룹 선대회장과 함께 1957년 그룹의 모태인 한국나이롱주식회사를 세우고 국내 처음으로 나일론을 생산해 화학섬유시대를 열었다. 20년 가까이 회장으로서 그룹을 이끌며 섬유산업이 수출산업으로 발전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9일 논평을 내고 “섬유산업 현대화와 노사간 산업 평화를 선도하던 이 명예회장의 별세에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학도병으로 식민지 시절을 감내하고 청년 기업인으로 한국전쟁을 겪은 이 명예회장의 생애에는 한국 산업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헐벗은 국민에게 따뜻한 옷을 입게 하겠다는 신념으로 직물공장(경북기업)을 세워 섬유산업의 터를 닦았고, 나일론 수요가 급증하자 1954년 일본과의 무역(개명상사)으로 나일론 개화기를 앞당겼다. 나일론 자체 생산에 성공한 뒤 1960년대에 판매 전담 회사인 코오롱상사와 폴리에스터사 제조회사인 한국폴리에스텔을 설립하며 성장한 이 명예회장은 1977년 코오롱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경리를 보며 부친의 사업을 돕던 10대 시절부터 따지면 기업에 입문한 지 약 40년 만에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 것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일론 공급이 수요를 앞지르면서 기업은 위기를 맞았다. 이 명예회장은 이를 ‘변신’의 기회로 삼았다. 1980년대엔 필름과 비디오테이프를 비롯한 각종 산업자재로, 1990년대 들어선 정보통신과 유통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하지만 서두르지는 않았다. “이상은 높이되 분수에 맞게 목표를 향해 쉼 없이 일정한 페이스를 유지해가는 ‘마라톤식 경영’”을 실천했다(1992년 황영조 만찬회 연설).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요란스럽지 않은 가운데 혁신을 기하는 것”이 그에겐 무엇보다 중요했다(1976년 사내 강연).
격동의 시기를 거치는 동안 국내 산업계는 노사갈등으로 내홍을 앓았다. 기업을 이끄는 요소 4가지(자금, 근로자, 시설, 경영자) 중 근로자가 핵심이라고 여긴 이 명예회장은 1980, 90년대 누구도 맡기 꺼려 한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직을 14년간 수행하면서 노사 양측의 입장을 이해하고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1990년 노사와 공익대표가 참석하는 국민경제사회협의회를 발족시켰고, 1993년엔 한국노총과 사회적 합의도 이끌어냈다.
이 명예회장을 아는 사람들은 ‘구구익선(舊舊益善)’이란 말을 떠올리곤 했다. 회장 재임 시절 50년 넘게 신은 이 명예회장의 슬리퍼를 비서실이 버리고 새 것으로 바꿨다가 된통 야단을 맞고 쓰레기통을 뒤져 찾아낸 이야기는 유명했다. 코트를 10년 넘게 입고, 출장 가서 수행비서들과 동숙하고, 나들이엔 도시락을 챙겨갈 만큼 알뜰했지만, 복지관 건립이나 마라톤 꿈나무 육성 등 사회공헌에는 유독 통이 컸다고 코오롱 사람들은 기억한다.
1996년 은퇴 후 강연이나 인터뷰 등을 통해 재계의 어른이자 인생의 선배로서 들려준 그의 경영철학은 각종 내우외환에 흔들리고 있는 우리 기업들에게 기본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한다. 평생 이 명예회장에게 기업은 “나 개인의 것이 아니라 종업원 모두의 생활의 터전이며 원천”이었다(1981년 KBS 강연). 또 “직장은 사회 번영의 원칙인 만큼 기업의 도산은 사회에 대한 배신 행위”(1991년 한 월간지 인터뷰)라고, “현상유지란 퇴보와 다름 없기 때문에 혁신적 사고로 어려운 경영여건의 탁류를 헤어날 수 있는 집념이 필요하다”(1982년 자서전)고 이 명예회장은 강조했다.
유족으로는 고 신덕진 여사(2010년 작고)와 사이에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 등 1남5녀를 뒀다. 발인은 12일 오전 5시, 장지는 경북 김천시 봉산면 금릉공원묘원.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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