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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공만 보면 뛰어요" 백발 소녀의 테니스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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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공만 보면 뛰어요" 백발 소녀의 테니스 사랑

입력
2014.11.09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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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메이저 본선ㆍ16강 처음 밟은 한국 프로테니스 선수 1호

은퇴 후 도미, 전문경영인 변신

사재 털어 국제주니어 대회 창설

"좋은 선수 나와 테니스 부흥 기대"

한국 프로 테니스선수 제1호 이덕희는 자신의 이름을 딴 '이덕희배 춘천 국제주니어테니스대회'를 14년째 후원해오고 있다. 그는 9일 "등급 5그룹으로 시작한 이 대회가 어느덧 2그룹 대회로 성장했다"라며 감회에 젖었다. 대한테니스협회 제공
한국 프로 테니스선수 제1호 이덕희는 자신의 이름을 딴 '이덕희배 춘천 국제주니어테니스대회'를 14년째 후원해오고 있다. 그는 9일 "등급 5그룹으로 시작한 이 대회가 어느덧 2그룹 대회로 성장했다"라며 감회에 젖었다. 대한테니스협회 제공

“와우! 잘한다!” 한 ‘백발 소녀’가 경기장 한편에서 박수를 치며 응원에 열심이다. 제법 쌀쌀한 초겨울의 날씨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보다 40년 이상이나 어린 후배 선수가 포인트를 성공시킬 때 마다 환호성이다.

9일 오전 강원 춘천 송암테니스코트장. 제14회 이덕희배 국제주니어테니스 선수권대회를 찾은 이덕희(61) 여사다.

그는 김다빈(17ㆍ조치원여고)의 여자부 단식 결승전을 지켜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몸은 한국을 떠나 미국에 거주하고 있었지만 늘 한국의 테니스의 부흥을 바랐던 그다.

지난 6일 갑작스럽게 귀국한 이 여사는 최근 남편을 저 세상에‘먼저 보내는’ 아픔을 겪었다. 재미사업가로 알려진 남편 조풍언씨가 투병 생활을 이어오다 병세가 악화돼 지난달 14일 별세했다. 이 여사는 개인적인 아픔을 뒤로 하고 후배들을 발굴하고 격려하기 위해 춘천에서 열린 이번 대회에 ‘조심스럽게’ 방문했다.

이 여사는 한국에 국제주니어대회가 전무하던 2001년 ‘통 큰’ 결단으로 사비를 털어 이 대회를 시작했다. 대회를 열게 된 계기에 대해 그는 “외국에 나가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 해외에 나가보니 한국에서 선수 생활하는 동안 받은 도움이 많이 생각났다. 후배들에게 돌려주고 싶었다”고 담담하게 밝혔다. 그는 1983년 30세의 나이로 은퇴하고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골프클럽을 운영하는 등 전문 경영인으로 변신했다.

그는 남녀 단식 결승전이 열리는 이날 오전 일찍부터 코트에 나와 ‘마당회’멤버들과 대회 운영 준비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 이 여사가 포함된 마당회는 여자 테니스 국가대표 선수들의 모임으로 대회 운영의 주축이 되고 있다.

테니스에 대한 이 여사의 열정은 여전했다. 그는 현재까지 한국 테니스의 침체기는 과도기일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대회 초창기 김선용, 전웅선 등 자질이 넘치는 주니어 선수들이 많이 나왔는데 성인무대에서 스타 선수로 성장하지 못해 아쉽다”면서도“한국 테니스가 다시 궤도에 올라야 한다.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임용규와 정현이 남자 복식 금메달을 딴 것을 계기로 선수들도 자신감을 되찾았을 것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테니스가 최고의 스포츠’라는 믿음에도 변함이 없었다. 그는 “나이가 들어 무릎이 아프지만 공을 보면 자연스럽게 뛰게 된다. 뛰다 보면 어느새 땀이 흐른다. 한 포인트 실수 해도 다시 만회할 수 있는 멘탈 게임”이라며 테니스의 장점을 나열했다. 이어 “모두 다 좋은 운동이지만 성장기의 아이들에게 테니스는 특히 권할 만 하다”며 “좋은 주니어 선수들이 많이 나오면 테니스도 부흥할 것이다”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한편 이날 남자 단식 결승에 오른 정윤성(16ㆍ양명고)은 제이크 딜레이니(호주ㆍ17)를 2-0(6-1 6-1)로 일축하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반면 김다빈은 젱 우슈앙(16ㆍ중국)에게 1-2(6-3 0-6 1-6)로 져 준우승에 그쳤다.

춘천=이현주기자 memory@hk.co.kr

●이덕희는 누구

대한민국 최초의 프로 테니스 선수. 이덕희 앞에 붙는 수식어는 늘 ‘최초’다. 1972년 만 19세의 나이로 호주오픈 테니스 본선에 출전해 한국 남녀 선수를 통틀어 처음으로 4대 메이저대회(그랜드슬램) 본선 무대를 밟았다. 그는 이 대회에서 1회전을 이겨 메이저 대회 본선 승리라는 기록도 남겼다.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 단체전 금메달, 복식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는 단ㆍ복식 금메달과 단체전 은메달을 수확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여자 테니스 투어대회를 누볐다. 1980년 프로 데뷔를 하면서 프랑스오픈(2회전), 윔블던(2회전), 호주오픈(1회전)에 출전하며 4대 그랜드슬램에서 활약했다. 이듬해 US오픈에서는 한국인 최초로 그랜드슬램 16강에 진출하는 대기록을 수립했다. 이형택이 2000년 US오픈 남자단식 16강에 오르기 19년 전이었다. 같은 해 서독오픈에서는 세계랭킹 1위 빌리 진 킹(미국)을 꺾고 8강에 진출하는 이변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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