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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국민채소 파프리카

입력
2014.11.07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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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집에 들렀더니 디저트 접시에 사과, 찐 고구마와 함께 노랗고 붉은 채소 몇 조각이 담겨 나왔다. 시원하고 달달 하면서도 아삭아삭 씹히는 식감이 마치 배와 사과를 섞어 놓은 맛이다. 파프리카(paprika)다. 거실에 있던 중학생 여자아이는 사과처럼 통째로 들고 베어먹고 있다. 카레나 샐러드, 볶음요리에만 넣는 줄 알았는데, “다이어트에도 좋고, 맛도 있어 온 가족이 과일처럼 즐기고 있다”는 게 안주인의 말이다.

▦ 파프리카는 고추의 일종으로 중앙아메리카가 원산지이다. 영어권에선 단고추(sweet pepper) 또는 종고추(bell pepper), 네덜란드에선 파프리카(paprika), 프랑스에선 피망(piment)으로 불린다. 국내에선 파프리카를 같은 단고추 계열이면서도 매운 맛이 있고 껍질이 질긴 피망과 구분하는데, 프랑스의 피망을 개량한 네덜란드 품종이 도입됐기 때문이다. 비타민 A와 C의 함유량이 다른 과일과 채소에 비해 월등히 높으면서도 열량은 낮아 다이어트 식품으로 인기다. 특히 비타민 C는 딸기의 4배, 시금치의 5배나 된다.

▦ 파프리카가 국내에 처음 소개된 건 1994년이다. 제주도에서 목장을 운영하던 한진그룹 계열의 제동흥산㈜이 항공기 기내식으로 공급하기 위해 재배한 게 시초다. 이후 영ㆍ호남 농업인들이 네덜란드에 가서 재배기술 등을 배워와 본격 보급하기 시작했다. 밤에도 최저 18도 이상 관리해야 하는 등 과채류 중에선 가장 높은 재배온도를 필요로 한다. 농민들은 시행착오 끝에 크기와 모양, 색깔, 맛 등에서 네덜란드산에 전혀 뒤지지 않는 제품을 생산해 지난해 일본시장의 64%를 석권했다. 국내생산량의 40%가 수출되고, 수출물량의 99%가 일본에서 소비된다. 한국의 간판 수출농산물로는 지난해 인삼(1억7,500만달러)에 이어 두 번째(9,000만달러)로 많다.

▦ 지난달 롯데마트에서 파프리카 판매가 전년 동기 대비 50% 증가, 채소 매출 순위에서 배추와 양파 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2010년 10월 6위에서 4년 만에 1위로 올라선 것. 국내 도입 20년 만에 국민채소 자리를 꿰찬 셈이다. 조만간 타결이 예상되는 한중 FTA로 농산물 피해에 대한 걱정이 높지만, 제2, 제3의 파프리카를 발굴해 중국시장을 공략한다면 비관만 할 상황은 아닌 듯하다.

박진용 논설위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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