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장 아들이 이사 가는 집에 가서 청소해라’‘이사장 댁 산소를 벌초해라’‘교내에 떨어진 은행알을 주워 이사장 사모님께 전달해라’ 부잣집에 고용된 파출부에게 주어진 일과가 아니다. 대학에서 일하는 청소용역 노동자들에게 지시된 업무다. 고용노동부가 전국 160개 주요 대학의 청소용역 노동자들의 용역계약 실태를 조사한 결과, 대다수가 열악한 임금과 노동조건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공립대 60곳과 사립대 100곳 가운데 정부가 규정한 최소임금 기준을 지키는 대학은 한 곳도 없었다. 정부가 2012년에 만든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에 따르면 청소ㆍ경비 등 간접고용 노동자를 쓸 때는 올해의 경우 적어도 시급 6.945원 이상 주도록 돼있다. 심지어 일부 대학은 청소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올해 5,210원)보다 낮은 금액을 주다 적발당했다.
대학과 용역업체가 체결한 용역계약을 보면 공동체의 가치와 정의를 가르치는 대학이 맞나 싶을 정도다. ‘업무 시간에 콧노래를 부르지 마라’ ‘일반 직원용 휴식공간에 앉지 마라’ ‘일할 때는 소매를 걷지 마라’는 등 대부분의 계약서에 인권침해 조항이 담겨 있었다. 청소노동자 금지행위 항목에 파업과 태업을 넣는가 하면 단체행동이나 쟁의행위를 하면 계약취소 또는 손해배상 청구를 명시하는 등 노동3권을 제한한 사례도 무려 244건이나 됐다. 이 정도면 ‘노예 계약’이나 다름없다.
이런 비인간적인 처우를 해결할 곳은 대학이지만 모르는 척 뒷짐만 지고 있다. 자신들이 실질적인 사용자인데도 모든 책임을 용역업체에 돌리고 있다. 대학마다 수천억원씩 적립금을 쌓아놓고도 임금 인상에 대해서는 “학교 재정이 빠듯하다”며 외면하고 있다. ‘지성의 전당’이니 ‘인권의 최후의 보루’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이번 조사를 통해 청소노동자 문제가 단지 몇몇 대학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난 만큼 시급히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일부 대학에서는 실제사용주인 대학 측이 청소노동자를 직접 고용해 처우개선에 나서고 있다. 대학 측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할 의지만 있다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가능한 일이다. 정부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고용부는 노동관계법 위반 대학에 대해서는 시정명령을 내리고, 바로잡지 않으면 사법처리 한다는 방침을 반드시 시행해야 한다. 교육부도 청소노동자들에 대한 인권침해적 요소가 없도록 관리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 대학 재정지원 평가 시 정부지침 준수 여부를 반영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대학이나 교육당국이나 학문의 전당을 자처하는 대학에서 반인권적 행태가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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