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상승하고 엔화 약세 가속화, 달러당 120엔까지 하락 예측도
도요타 등 수출기업 숨통 트였지만 수입 의존도 높은 中企 등 비상
좀처럼 약발이 들지 않는 아베노믹스를 살리기 위한 극약처방으로 아베 신조 정권과 일본은행이 단행한 무제한 금융완화에 대한 일본내 찬반양론이 거세다. 추가 완화 결정에 주가는 상승하고 엔화 약세가 더욱 가속화, 수출기업의 숨통은 트였지만 재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급속한 엔저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일본은행이 금융정책결정회의를 통해 추가 금융완화책을 결정한 것은 지난 달 31일. 1년간 매입할 자산을 현재 60조~70조엔에서 80조엔으로 늘려 시중 자금량을 확대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올해 4월 소비세를 5%에서 8%로 인상한 영향으로 국내 소비가 대폭 감소, 4~6월 국내총생산(GDP)이 전기 대비 7.1% 하락한 것이 주원인이었다. 경기회복 속도도 예상보다 더뎌 당초 일본은행이 제시한 물가 상승률 목표 2%는 고사하고 1% 달성에도 미치기 어려워 추가 완화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일본은행 측 설명이다.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는 5일 “물가 상승 목표 조기 달성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겠다”며 “물가 하락 위험이 이어진다면 행동에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고 추가 금융완화 의지를 더욱 확고히 했다.
아베 총리의 경제 책사인 구로다 총재의 발언에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추가 금융완화 정책결정이 나자 1달러당 108엔이던 엔화는 112엔으로 가치가 떨어졌고, 7일 현재 115엔까지 급락했다. 닛케이 평균 주가는 6일 장중 한때 1만7,000을 넘는 등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아베노믹스의 핵심 정책인 무제한 양적완화로 엔저가 지속되면서 일본 경제는 양극화로 치닫고 있다.
도요타 자동차는 최근 엔저 덕분에 2014년도 연간 순이익이 1937년 이후 최대치인 2조엔을 달성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북미지역 자동차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높아진 때문이다. 엔 가치가 1달러당 120엔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어 도요타자동차의 이익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닛산, 마쓰다 등 여타 자동차 업계는 물론 상당수 수출기업이 엔저에 따른 수익 증가를 기대하고 있다.
반면 가파른 엔화 약세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특히 수입 의존도가 높은 식품, 의류 업계와 중소기업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비상이 걸렸다. 각 업계는 원자재 상승에 맞춰 줄줄이 가격인상을 단행하고 있어 소비는 더욱 위축될 수 밖에 없다.
UCC우에시마커피와 키커피 등 일본 커피 업계는 이달 1일부터 슈퍼마켓 등에서 판매하는 가정용 레귤러 커피를 최대 25% 인상했다. 마루타이는 라면을 비롯한 생산 제품 절반에 해당하는 60여종을 내년 1월부터 6% 올리기로 했다. 엔화 약세로 원료인 밀 수입 가격이 인상된 탓이다. 유제품과 냉동식품업계 닛신도 엔화 약세가 지속되면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도쿄 고토구의 한 슈퍼마켓에서 만난 70대 주부는 아사히신문에 “연금은 줄어드는데 식품 가격 상승만 눈에 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치권과 재계에서도 과도한 엔화 약세에 대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잇따르고 있다.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총무회장은 6일 열린 당내 정책위원회 회의에서 일본은행의 통화완화책을 지목, “엔화 약세를 유발, 일본 경제를 해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가 이런 문제에 개입, 통화 정책을 세밀히 검토해야 한다”며 “출구 전략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엔화 약세를 용인하던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게이단렌 회장도 “더 이상의 엔저는 일본 전체를 봤을 때 바람직하지 않다”며 털어놨다.
일본 관련업계에 따르면 올 6월 이후 수입 원재료 가격 상승으로 도산하는 기업만 매달 20여개씩 나오고 있다. 경제산업성은 벌써부터 엔저 피해가 우려되는 중소기업 지원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 아베 총리마저 최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엔화약세로) 가계 및 중소 사업자들에게서 단점이 나오고 있다”고 토로할 정도다.
뉴욕타임스는 5일 “아베 정권의 금융완화 정책으로 도요타 등 대기업만 혜택을 보고 있다”며 “2012년 이후 달러에 대한 엔 가치가 30%나 떨어졌지만 일본의 무역수지는 적자를 기록, 아베노믹스에 대한 일본 사회의 실망감도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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