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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시대정신이 사라진 사회

입력
2014.11.0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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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Zeitgeist)라는 말이 있다. 한 시대를 꿰뚫는 사고방식, 감정, 가치관 등을 통칭하는 개념이다. 더 나아가 해당 시대가 실현하려고 추구하는 집합적 가치를 시대정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즉 시대정신은 이미 존재하기도 하고, 현재 존재하지 않지만 추구하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1960년대 이후 ‘개발독재시대’의 시대정신은 산업화였다. 산업화되지 않은 한국사회는 시대정신으로서 산업화를 추구했다. 산업화가 시대정신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한국사회는 시대정신으로서 민주화를 추구했다. 1990년대 이후 이야기다. 2000년대에 들어서 산업화와 민주화가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으면서 새롭게 추구할 시대정신으로서 ‘선진화’와 ‘복지ㆍ연대’가 등장했다.

그런데 선진화를 꼭 복지후진국 미국식 선진화로 볼 것이 아니라면 선진화 자체도 복지ㆍ연대와 매우 깊은 관련을 갖는다. 일부 미국식 자유주의 복지국가를 제외하면 선진국 자체가 복지와 연대를 (경제)성장과 동일하게 중요시하는 복지국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장화ㆍ민간영리화를 ‘선진화’로 호도하는 보수세력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들어 한국사회는 사회연대에 기초한 복지국가 건설을 시대정신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복지국가로 부를 수 있다면 그 나라에는 정경유착, 관피아, 지하경제 등 문제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복지국가의 기본 토대로서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복지국가의 중요한 토대는 정치적 민주주의와 평화이다. 정치ㆍ경제 권력이 언론을 통제하고 언론 자체가 정치ㆍ경제 권력이 돼 정언유착을 하는 복지국가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혹자는 이스라엘도 복지국가라고 이야기하지만, 끊임없이 전쟁 위협에 시달리고 이를 이용해 국민을 통제하는 국가를 복지국가로 분류하는 경우는 드물다. 공영방송 풍자 코미디에서 메르켈 총리를 아무리 조롱해도 서로 웃고 넘어가는 독일이 그래서 복지국가다. 정치풍자를 위해 메르켈의 신체 부위를 과장해 묘사한 사람이 경찰 조사를 받았다는 소식을 독일에서는 접할 수 없다. 호전적 깡밖에 남지 않는 북한에게 “한번 붙어보자”는 식으로 맞서는, 그런데 작전권은 “내가 갖지 않겠다”며 꼬리를 빼는 장군들 때문에 불안한 한반도 위에 평화를 기초로 하는 복지국가로의 길은 멀고도 험하기만 한다.

지난번 대통령 선거에서 한국사회가 추구해야 할 시대정신을 제대로 의제화한 진영의 승리는 당연한 결과였다. 집권당의 실정에서 반사이익만 얻으려고 하고 정치ㆍ경제 민주화와 평화에 기초한 시대정신으로서 복지국가를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 현 야당의 패배는 놀랍지 않았다. 국정원 선거개입만 없었다면 근소한 차이(?)를 극복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에 아직도 정치공학적 잔머리만 굴리면서 그나마 해외에서 우리의 자부심을 지켜주고 있는 유엔사무총장이나 흔들면 다음에 집권할 수 있다고 보는가?

19세기 후발산업국으로서 노동자 문제와 계급 대립의 위기에 직면한 독일제국을 구한 시대정신은 복지국가였다. 사회보험제도 도입을 통한 의료ㆍ소득 보장제도의 확립이 있었다. 재상 비스마르크가 중심에 있었다. 가톨릭과 개신교가 축적한 재원과 인력을 사회문제 해결에 투입하는 기독교 사회운동이 전개되면서 오늘날 독일의 사회서비스 전달체계의 기초가 생겨났다. 19세기말 시대정신으로서 복지국가는 1차대전 이후 바이마르공화국에서 민주주의라는 시대정신과 결합, 나치시대라는 중간의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독일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시대정신의 실종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상황에 있다. 시대정신의 본질을 이해한 줄 알고 뽑아준 대통령은 ‘경제살리기’라는 대증요법에만 매달리고 있다. 역사상 위대한 지도자는 숲의 전체 모습을 그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빚내서 집사는 경제정책은 숲 속 나무 한 그루에 불과하다. 숲을 형성하는 설계도로서, 즉 시대정신으로서 경제민주화와 복지, 평화통일을 제시했다면 그 설계도를 기준으로 비전을 제시해야 국민이 살 수 있다. 선거 때 믿었던 국민들은 이제 더 빚을 낼 여력도 없이 불안하기만 하다. 사라진 시대정신을 하루 속히 불러올 때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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