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한 표정ㆍ동작 놓치지 않고 대사 완벽 암기...체중 감량도
아버지ㆍ남편역만 하던 중년 배우들
개성 있는 연기로 드라마 인기 견인
작은 움직임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껌을 씹는 입 놀림, 상대를 향해 치켜 뜬 눈 흘김, 웃음 뒤에 숨은 꽉 다문 어금니, 감은 두 눈 위의 찌푸린 눈썹 등 표정 하나 눈빛 하나에 온 힘을 기울인다. 현재 TV를 장악해 카리스마 연기를 펼치는 중년 배우들의 공통점이다. 누가 이들을 그저 아버지와 아저씨의 배역으로 한정했는가. 젊은 배우들이 할 수 없는 디테일에 숨은 이들의 노력이 실로 가상하다.
5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서울스퀘어에서 실제 직장인의 모습으로 기자단을 맞은 tvN ‘미생’의 이성민(47)은 “저는 드라마 준비를 못했고 컴퓨터나 타자도 다룰 줄 몰라요”라며 엄살부터 부렸다. ‘미생’에서 오상식 과장으로 나오는 그는 누가 뭐래도 직장 생활에 찌든 모습 그대로다. 양팔을 허리에 두고 버럭 화를 내거나, 임원을 보고 긴장하거나 비굴한 표정을 짓는 우리 곁의 바로 그 과장. 이성민은 “대본에 명확하고 디테일하게 설명돼 있다”고 했지만 책상 앞 표정 관리나 부하 직원을 대할 때의 표정과 손동작 등은 배우가 스스로 깨우치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 섬세함이다.
‘미생’의 김원석 PD는 “이성민은 스스로 취재해 아주 작은 디테일을 잡아낸다”고 말했다. 김 PD는 이성민이 바이어 미팅을 앞두고 껌을 씹고 뱉으며 입을 닦는 등의 긴장감을 표현한 연기를 최고로 쳤다. 대사 역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읊어대는 완벽함은 필수조건. ‘직장인들의 생활백서’로 불리는 ‘미생’이기에 오 과장의 짓눌린 회사생활의 디테일은 중요한 부분이다. 장그래(임시완)와 안영이(강소라), 한석율(변요한) 등이 오과장과 관계를 형성하며 이야기를 끌어가기 때문에 이성민의 역할은 ‘미생’에서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4% 대의 높은 시청률 중 8할은 그의 몫이라고 봐야 한다.
4회까지 10% 내외의 안정적 시청률을 보인 MBC 월화드라마 ‘오만과 편견’에도 당당히 주연으로 이름을 올린 배우 최민수(53)와 손창민(50)이 있다. 인천지검 부장검사로 열연 중인 최민수는 ‘디테일의 대가’라 불릴 만하다. 최민수는 “검사로 빙의했다”며 진짜 부장 검사의 포스를 내고 있다. 극중 회의할 때 두 눈을 지긋이 감으며 감정 조절을 하는 모습이나 “부장인 내가 틀렸다는 거야? 로스쿨 출신은 이래서 안 돼!”라며 후배를 무시하는 장면에서는 소름이 돋을 정도다. 최민수는 “작품이 끝날 때까지는 연기자가 아닌 검사”라며 “대사를 외우는 게 아니라 완전히 세뇌시켜서 집어 넣어야 한다”고 디테일의 비결을 밝혔다. 그런 최민수를 두고 ‘오만과 편견’의 김진민 PD는 “대한민국의 국보급 배우”라고 주저 없이 말한다.
변호사 출신에서 건달로 전락한 정창기 역의 손창민도 만만치 않다. 도박장에서 날쌔게 머리를 굴리고 구치소를 전전하는 인생을 리얼하게 그리려고 5㎏을 감량했다. 타이트한 가죽 점퍼를 입고 강렬한 인상을 내뿜는 모습은 진정성이 무엇인지 말해준다. 현장에서 만난 손창민은 “지금까지 보여줄 기회가 없었던 것들에 대해 내재돼 있던 열망이 있었다”며 남편이나 아버지 등으로 한정됐던 연기에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정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개성 있는 연기로 드라마의 중심을 책임지는 중년 배우들의 힘이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강은영기자 kis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