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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련하다 연민정

입력
2014.11.06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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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정의 삶이 어떤 메시지를 전달했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요.” ‘막장극’ 논란을 불렀던 MBC TV 주말극 ‘왔다! 장보리’에서 신분 상승을 위해 패륜, 살인교사 등 온갖 악행을 서슴지 않는 ‘악녀’ 연민정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이유리(34ㆍ사진)가 최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 얘기다. 캐릭터를 잘 소화한 덕분인지 그가 감내해야 했던 건 대부분 질타였지만 그에게 연민과 공감을 느끼는 시청자도 많았다. 세습 지위가 결정적인 사회에 맞서 불가능할 것 같은 사투를 벌이는 그가 적잖이 가련했기 때문이리라. 한국일보 자료사진
“연민정의 삶이 어떤 메시지를 전달했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요.” ‘막장극’ 논란을 불렀던 MBC TV 주말극 ‘왔다! 장보리’에서 신분 상승을 위해 패륜, 살인교사 등 온갖 악행을 서슴지 않는 ‘악녀’ 연민정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이유리(34ㆍ사진)가 최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 얘기다. 캐릭터를 잘 소화한 덕분인지 그가 감내해야 했던 건 대부분 질타였지만 그에게 연민과 공감을 느끼는 시청자도 많았다. 세습 지위가 결정적인 사회에 맞서 불가능할 것 같은 사투를 벌이는 그가 적잖이 가련했기 때문이리라. 한국일보 자료사진

막장 현실의 그림자가 막장극이다. 정상 출구는 막혔다. 곤경은 대물림 된다. 다시 태어나야 한다. 연민정의 불온한 시도다. 누가 비난하랴. 좌절이 편만한 갱도의 어스름한 희망을.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는 과연 가져야 하는지 망설여진다는 내 말에 친구가 나름 용기를 주려 했다. “자기 먹을 건 다 가지고 태어난다잖아.” 전혀 와닿지 않는다. 이제 자기 먹을 것을 가지고 태어나는 부류는 정해져 있다. “파도 파도 빚밖에 안 나오는 집”이라며 제 엄마에게 악다구니를 치던 드라마 속 ‘악녀’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 빚을 남길 부모를 버리고 돈 많은 집의 양녀로 들어가 상속자가 되겠다는 야망에 돌을 던지기보다 연민이 먼저 찾아온다. 그 정도로 이미 우리의 삶은 모욕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 이런 설정이 ‘막장’이라고 하지만 실은 현실의 극단적 반영이다. 과거에는 가난한 애인을 버리고 돈 많은 배우자를 찾는 배신자들이 드라마에 등장했다면, 이제는 가난한 부모를 버리고 돈 많은 부모를 찾아 상속자가 되려는 패륜아가 극을 이끌어간다. (…) 야망의 세월은 지났으며 상속의 시대가 진행 중이다. 개인의 능력이 출신 배경을 뛰어넘을 수 없는 사회다. (…) 모욕당하는 이들은 점점 늘어나는 중이며 주인들은 갈수록 악랄해지고 있다. 더 비참한 현실은, 주인이 되기 위해 모욕의 가해자로 너도나도 참여하는 모습이다. 갈수록 급격하게 사회는 서열을 세우고, 살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밟으려 애쓴다. ‘너도 살고 나도 살자’가 아니라 ‘내가 못사니까 너도 못살아야 한다’는 식이다. 그래서 공무원은 ‘철밥통’이고 대기업 노조는 ‘귀족노조’라고 지탄받는다. (…) 삶의 질의 하향평준화가 평등은 아니다. (…) 출산 기피에 대한 어리석은 착각은 이를 ‘여성 문제’로 보는 시각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아이는 여자 혼자 낳지 않는다. 기피의 주체는 대한민국의 ‘대단한’ 여성이 아니다. 제 삶의 모욕도 감당하기 힘든 이 척박한 세상에 굳이 자식을 낳아 모욕의 대물림을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다.”

-모욕당하는 삶(한겨레 ‘야! 한국사회’ㆍ이라영 집필노동자) ☞ 전문 보기

“장안의 화제였던 MBC 드라마 ‘왔다! 장보리’가 막을 내렸다. 최종회의 시청률이 40%에 달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 텔레비전 드라마는 대중의 욕망을 드러내는 대중문화의 거울이다. 네덜란드 여성학자 이엔 앙은 댈러스 보기라는 저작을 통해 왜 네덜란드 여성들이 자신들의 처지와 동떨어진 통속적인 미국 부자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는지, 이유를 분석했다. 원인은 부자보다도 여성이라는 성차에 있었다. 네덜란드 여성들은 미국 부자의 이야기에 매력을 느낀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드러난 미국 여성들의 처지에 공명했다는 것이다. (…) 비현실적인 ‘막장드라마’에 많은 시청자들이 호응하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다. (…) 특히 관심의 초점을 받았던 ‘연민정’이라는 캐릭터는 그 이름에서 연상되듯이, 시청자들에게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대상 자체였다. 막장드라마로 손쉽게 명명되었지만, 이 지점에서 왔다! 장보리는 한 편의 우화극으로 탈바꿈한다. 각각의 캐릭터는 입체적이라기보다 평면적으로 규범적인 가치를 대리한다. 너무 착한 장보리와 너무 악한 연민정이라는 이분법이 드라마를 밀고 가는 주요 갈등이었다. 그러나 이 갈등은 이상한 결과를 낳았다. 운명의 피해자인 장보리라는 캐릭터에 대해 시청자들은 피로감을 느꼈던 것이다. (…) 출세를 위해 온갖 범죄에 가담하는 캐릭터에 시청자들이 ‘연민’의 시선을 보냈다는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앙의 주장을 차용한다면, 연민정에 대한 시청자들의 공감은 ‘정서적 리얼리즘’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 시청자들은 왜 장보리보다도 연민정에게 더 정서적 친화성을 드러낸 것일까. 드라마에서 출세를 위해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연민정의 모습과 오직 개인의 능력 이외에 기댈 곳이 없는 자신의 모습이 오롯이 겹쳐 보였던 것은 아닐까. 텔레비전 안에서 펼쳐지고 있는 상상과 텔레비전 밖에서 자신이 겪는 현실 모두 극단적이라는 점에서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시청자들이 느꼈던 것은 아닐까. (…) 지금까지 연민정과 같은 캐릭터는 현실에서 배제되어야 할 대상이었다. 무엇인가를 배제시키려면, 그것과 자신이 확연히 다른 세계에 속해야 한다. 그러나 더 이상 그 분리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게 되었다. 극소수를 제외하고 모두가 몰락하고 있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린 왜 악녀 ‘연민정’에 연민을 느끼나(10월 18일자 경향신문 ‘이택광의 왜?’ㆍ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 전문 보기

고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육은 부질없다. 미래는 이미 과거가 먹어치웠다. 불행의 근원은 야망이다. 물려줄 것 없는 부모는 염치라도 있어야 한다. 신이 계급 내린 중세는 행복했다.

“보건복지부가 작년 조사에서 18세 미만 한국 청소년 삶의 질이 OECD 국가 중 꼴찌였다고 발표했다. (…) 대한민국 10대가 행복하지 않다는 게 별반 새로운 뉴스는 아니다. 한국 청소년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다. 두말할 것 없이 지나친 입시 경쟁 탓이다. 책 ‘대한민국 부모’는 10대 자녀를 둔 가정의 병든 실태를 고발한다. 성적 스트레스로 얼굴을 찡그리거나 입을 씰룩이는 장애, 환청과 환시, 책만 보면 눈가가 쓰리고 아픈 ‘책 알레르기’를 호소하며 상담소 찾는 아이들 고백이 적혀 있다. 부러움을 사며 아이비리그에 간 우등생 중에 상당수가 방학이면 한국에 들어와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고 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지은 시 ‘여덟 살의 꿈’이 지난해 인터넷을 달궜다. ‘나는 영훈초등학교를 나와서/ 국제중학교를 나와서 민사고를 나와서/ 하버드대를 갈 거다/ 그래 그래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정말 하고 싶은 미용사가 될 거다.’ 아이들은 어쩌다 꿈을 이루려면 ‘스펙’부터 쌓아야 한다고 믿게 된 걸까. 좋은 대학 못 가면 인생이 막장으로 치닫는다 겁주는 부모들. ‘댁 자녀가 수업 태도 불량으로 벌점 1점을 받았으니 주의시키라’며 기계적으로 문자를 날리는 교사들. 아이들을 불행으로 몰아가는 입시 제도는 수술할 생각 않고 ‘9시 등교’ ‘자유학기제’ 같은 당의정 정책만 남발하는 교육 당국자들. 누구 죄가 더 클까.”

-내 아이는 행복할까(조선일보 ‘萬物相’ㆍ김윤덕 논설위원 겸 문화부 차장) ☞ 전문 보기

“소파 방정환 선생이 1923년 5월 5일에 발표한 어린이날 선언문에는 어린이의 인격권과 행복권이 들어 있다. (…) 민족의 운명이 가장 어두웠던 시기에도 어린이의 행복에 큰 가치를 부여하려고 사회적 노력을 했는데, 21세기를 사는 한국의 어린이들은 삶이 불행하다고 느낀단다. (…)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말 4007가구를 대상으로 0~17세 아동의 삶에 대해 종합실태 조사를 한 결과 한국 아동의 ‘삶 만족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였다. (…) 특히 한국 아동의 결핍률은 OECD 최고를 기록했는데, 아동의 52.8%가 정기적인 취미활동이나 스포츠, 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는다. 아동의 26.1%는 자전거를 타고 야외활동을 하는 일도 없고, 아동의 22.4%는 생일잔치, 가족행사 등의 이벤트에 참여하지 않았다. 공부 열심히 해 좋은 성적을 내라고 스트레스는 잔뜩 주면서 이를 해소할 수 있는 취미활동이나 야외활동도 없는 거다. 또 중고생은 물론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학교 시험 기간에 가족 행사에 불참해도 용인해 주는 공통체적 삶이 붕괴하는 한국 사회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 심각한 것은 지난 15년 동안 14차례나 교육 과정이 바뀌면서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10대 사망률 1위가 자살로 나타나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어릴 때 행복했던 기억들이 고통스러운 삶의 현장을 뚫고 나가는 힘이 된다. 이웃에 공감하는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라도 아동이 행복하도록 대책을 내고 배려해야 한다.”

-아이의 행복(서울신문 ‘씨줄날줄’ㆍ문소영 논설위원) ☞ 전문 보기

* ‘칼럼으로 한국 읽기’ 전편(全篇)은 한국일보닷컴 ‘이슈/기획’ 코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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