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입에 곰팡이가 슬기 시작한 것일까. 돈 빌려주겠다는 전화, 강원랜드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는 전화, 고수익이 보장되는 부동산에 투자하라는 전화를 3분 이상 붙들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예전엔 3초도 안 들고 있던 것들이다. 퇴근 후 집사람한테 한다는 소리가 ‘아는?’ ‘밥 묵자’ ‘자자’ 뿐이라는 경상도 남자, 그 무뚝뚝함에서 역시 자유롭지 못한 나였지만 요즘 부쩍 수다 욕구가 커졌음을 느낀다. 물론 아내가 퇴근하면 ‘정상’으로 되돌아오긴 하지만, 아내가 없는 낮 시간 동안 ‘비슷한 지능을 가진 성인과의 면대면 대화’가 거의 실종되고 보니 허전함이 적지 않다.
아들은 실물 기준으로, 닭보다 홍학을 먼저 봤고 소보다는 멸종위기의 호랑이를 먼저 봤다. 동물 소리 흉내 내는 것도 ‘음매음매’보다 ‘어어어어허’(‘어르릉’의 아들 버전)를 먼저 했고, TV에선 기린이나 사자, 코끼리를 보고 환호했지 돼지에겐 시큰둥하다. 돼지는 아직 직접 보지 못했다. 가만 보니 아들만 그런 게 아니다. 주변 많은 부모들도 사정이 비슷하다고 했다. 동물원에도 닭, 소, 돼지, 염소를 모아 놓은 ‘가축 코너’ 정도 하나 있으면 나쁘지 않을 텐데 그런 동물원은 찾아보기 힘들다. 결국 서울서는 돈 주고도 닭 소 돼지를 보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스팸성 전화를 붙들고 입안 곰팡이를 닦아내고 있던 와중에, 가축 동물원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와중에 외출 제안이 들어왔다. 고구마 농사 멤버 중 하나가 ‘같이 놀자’고 했고, 또 다른 멤버 하나가 회동 장소로 닭 돼지 오리를 볼 수 있는 근교 동물 농장을 추천했다. 가자! 갑시다! 내가 뭐라고 토를 달거나 수정할 곳이 한 군데도 없는 완벽한 제안들이었다. 이렇게 해서 처음으로 성사된 게 지난 주말 ‘아빠 셋, 아이 셋 외출’이다. 아들의 호기심도 채워주고, 이 아빠의 ‘무료함’도 달랠 수 있는 건 역시 가까운 사람들과의 외출이다.
들뜬 세 아빠들의 관건은 집결지까지 홀로, 무사히, 아이를 어떻게 데리고 이동하느냐는 것. 아들의 경우 카시트에 적응한 터라 네댓 시간까지도 비교적 얌전히 타고 가는 편이지만, 언제까지나 옆에서 같이 놀아주는 엄마가 있을 때의 이야기다. 차 지붕이 떠나가도록 울고불고하면 더 이상 운전하기가 힘들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안아 달랜 다음 다시 출발해야 한다. 낮잠 시간을 골라 차를 태우는 게 최상인데, 세 아이 낮잠 시간도 제 각각이고, 점심에도 약간 시차가 있어 쉽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들은 얼추 비슷한 시간에 나쁘지 않은 컨디션의 아이 셋을 데리고 모였다.
뭐, 아빠들의 외출이라고 해서 딱히 새로울 것은 없다. 삼삼오오 모인 많은 엄마들이 그렇듯 아이들끼리 놀도록 두고, 아빠들은 그 옆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하면서 놀면(?) 된다. 아이들이 유대감을 갖고 어울려 놀 정도는 아니지만, 적당한 케어만 해주면 대단히 안정된 상태로, 기분 좋은 상태서 저들끼리 논다. (애들은 옆에 부려놓고, 떠들면서 노는 엄마들을 앞으론 욕하지 않기로 했다!) 또 이렇게 만나면 속사포처럼 튀어나올 것 같은 이야기들도 튀어나오지 않았다. ‘비슷한 지능을 가진 성인과의 면대면 대화’ 욕구 뿌리도 결국 육아고독이지 않았나 싶다.
동물 농장에 남자 셋이 유모차 한 대씩 밀고 다니니 아줌마들의 시선도 적지 않게 받았다. ‘어~머, 저긴 아빠들이 애들 데리고 나왔나 봐.’ 남자들만 모여서 아이들과 씨름하는 모습이 신기했을 수도 있고, 그들이 알지 못하는 세 남자의 세 여자가 부러웠을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아이와 아빠’의 외출은 곧 아내의, 엄마의 자유다. 우리는 언제 어떻게 똑같은 양과 질의 자유를 보장 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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