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대정부질문서도 잇단 수모
정홍원 국무총리의 교체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세월호 참사 와중에 사퇴를 표명했지만 후임 총리 인선이 잇따라 좌절되면서 총리직에 유임됐고 세월호 정국이 마무리될 때까지 행정부를 통할한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최근 여야가 세월호특별법에 최종 합의함에 따라 정 총리가 당초 부여받은 역할도 사실상 종료됐다는 게 청와대의 판단이라는 것이다.
정 총리는 지난해 2월 박근혜정부의 초대총리로 임명됐지만 유임되기 직전까지도 굴곡이 적지 않았다. 정 총리는 취임 일성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던 ‘책임총리’에 대한 포부를 밝혔지만 이는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정 총리는 임기 내내 철도노조 파업과 국정교과서 파동 등의 고비마다 담화문 발표 등을 통해 박 대통령의 의중을 대신 전달하는 역할에 그쳤다는 지적을 받았다. 때문에 ‘의전 총리’ ‘대독 총리’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특히 야당과 시민단체가 올해 2월 개인정보유출 대란과 관련해 당시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해 해임 건의 등을 요청했을 때도 정 총리는 명확한 대답을 회피했다. 때문에 당시 정가에서는 “책임총리의 역할을 스스로 부정했다”는 비판이 비등했다.
정 총리는 세월호 참사 과정에서 참사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지만 안대희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잇따라 검증단계에서 낙마하면서 사상 처음으로 유임되는 총리가 됐다. 정 총리는 유임 이후 세월호 사태에 대한 수습 국면에 집중했으나 행정부 장악 동력마저 떨어진 상태여서 총리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정 총리는 세월호 정국에서 유족들을 만나러 진도체육관을 찾았다 물벼락 세례를 받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특히 최근 국정감사와 대정부질문 과정에서는 세월호 당시를 제대로 기억하지도 못해 야당 의원들로 “세월호를 벌써 잊었느냐”는 질타를 받았다. 정 총리는 31일 대정부 질문 답변에서 배가 완전히 침몰한 시간을 묻는 새정치민주연합 유성엽 의원의 질문에 “기억을 잊어버렸다”며 “오후 1시인가요?”라고 되묻기까지 했다. 당시 국회 본회의장 주변에서는 세월호 참사 책임을 지고 사의까지 표명했던 총리로서 “세월호 사고를 너무 잊은 거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정 총리는 5일 대정부질문에서도 단말기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 시행에 따른 시장의 혼란과 관련해 “아직 시장에 안착되지 못하고 여러 논란을 빚고 있는데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정부 관계자는 “사실상 정 총리의 수명은 세월호 참사와 함께 끝이 났고 이후는 식물상태에서 명목만 유지했던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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