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과거 속 인물들 등장시켜
평범함 속 굳어진 지역감정 그려

한국에서 대구와 경상도의 이미지는 특별하다. 대구에 사는 만화가 김수박(40)은 “왜 경상도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만화를 그렸다. 그리고 그 만화의 끝에 그가 마주친 것은 1980년 5월 광주였다.

‘메이드 인 경상도’(창비ㆍ236쪽ㆍ1만2,000원)는 사실 김갑효(김수박의 본명)에 대한 이야기다. 2006년작 ‘아날로그맨’에서 자전적인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는 김수박은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만화가로 데뷔하던 당시에는 물론 부담감이 있었지만 곧 어렵지 않게 됐습니다. 평소 말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 속내를 풀어헤치고 싶은 열망이 더 강해졌어요. 지금은 만화로 제 이야기를 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김수박은 용산 참사를 다룬 2010년작 ‘내가 살던 용산’과 백혈병을 앓은 삼성반도체 노동자 문제를 다룬 2012년작 ‘사람냄새’ 등 사회 이슈를 주제로 한 작품을 그려왔다. 하지만 그는 사회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기보다 그 속에 있는 개인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드러내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번 만화에서도 그 섬세함이 빛을 발한다. ‘메이드 인 경상도’에는 김수박의 가족과 친지, 평범한 경상도 사람들이 등장한다. 김수박은 자신의 과거 이야기 속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경상도에 대한 편견 섞인 질문에 답하기로 했던 것이다.
경상도인의 특성으로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이며 자기 집안과 자기 지역만 중시한다는 점이 흔히 거론된다. 하지만 이는 다른 지역의 1970~80년대 가장들에게서도 흔히 발견되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이다. 김수박은 “지역의 특성이 문제가 아니라 서로를 어떻겠거니 짐작하고 먼저 규정하는 것이 문제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역감정은 엄연한 현실이다. 김수박은 경상도 사람만이 아닌 평범한 사람의 마음 속에서 악마를 찾아낸다. 북한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고 다른 지역 사이를 이간질해 사람들을 통제하고 반사이익을 얻는 권력자들이 지역감정의 원인을 제공했다. 하지만 거기에 의문을 던지지 않고 침묵한 채 살아가는 이들도 문제다. 김수박의 기억 속 1980년대는 오로지 ‘먹고 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타인의 문제를 외면하는 것이 정당화되는 시대였다. 부모님도, 주변 사람도, 심지어 김수박 자신도 “공부만 하면 몰라도 됐다.” 하지만 “아무튼 그건 틀린 말이다. 알고자 하는 것이 공부인데.”
김수박은 1988년 TV에서 광주민중항쟁을 다룬 ‘어머니의 노래’라는 다큐멘터리를 볼 때까지 사건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몰랐다. 사건 당시부터 8년간 아버지뿐 아니라 모든 경상도 사람들이 광주를 외면하고 침묵했다. 아들이 1980년 광주에 대해 질문하자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 때는 시절이 엄혹했다. 묵고 살아야 될 거 아이가?” 김수박은 “경상도 사람들에게 있어 광주는 미안하면서도 불편한 감정을 떠올리게 한다. 그게 집단적인 감정이 되니까 반작용으로 더 광주 문제에 대해서 고개를 돌려버린 것”이라고 분석한다.
지역감정 문제는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인터넷에는 광주민중항쟁을 비하하는 이들이 새롭게 등장했다. 하지만 김수박은 서로를 미워하기보다는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자고 말한다. “우리가 ‘일베’를 어떤 특성을 가진 사람으로 규정하고 미워하기만 한다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을 겁니다. 문제 그 자체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김수박은 “저절로 끝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만화는 경상도 사람들이 먼저 광주 사태에 대한 불안한 침묵을 깨야 한다는 결론으로 마무리된다. 한국인들이 서로를 외면해야만 했던 겨울이 지나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봄이 왔기 때문이다.
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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