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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시들다, 라는 멋진 말

입력
2014.11.0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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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름다운 가을 날이었다. 집 근처를 산책하고 있었다. 한쪽은 차가 다니는 길이었고, 다른 한쪽으로는 숲이 이어졌다. 3시쯤, 일찍 기울어가는 볕에서는 진한 가을 냄새가 났다. 햇볕에서 느껴지는 가을 냄새는 시원하고도 따뜻했다. 아주 상쾌한 기분에 걸으면 걸을 수록 기분이 좋았다. 끝도 없이 걸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멀리 보이는 앞 사람의 등에 따뜻한 햇볕이 내려 앉아 있었다. 그 햇볕이 내 등에도 쏟아지고 있겠지… 그런 생각에 참 든든했다.

모든 것에 가을이 담겨 있었다. 자작나무, 윤기가 돌던 하얀 나무 껍질은 꺼칠해졌지만, 듬성듬성 남은 노란 잎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과는 멋진 조화를 이룬다. 붉게 물든 느티나무 이파리는 꽃처럼 아름답다. 은행나무의 노오란 잎은 눈이 부실만큼 아우성이다. 멀리멀리 이어진 길의 바닥은 여름의 초록물결을 지나 이제 옅은 황금물결이다. 여름이 왕성했다면, 가을은 편안하다.

그렇게 한참 걷다가 시들어가는 수국을 봤다. 두 손으로도 감싸지 못했을 정도로 커다랬던 꽃망울이 이제는 한 줌밖에 되지 않는다. 촉촉했을 꽃잎은 수분이 다 날아가서 곧 바스러질 것 같고, 붉디 붉었을 색깔 역시 이제는 바래서 붉은 여운만 남아있다. 깻잎같이 생긴 손바닥만한 잎사귀들도 지금은 다 떨어졌다. 그런데.

그 꽃이 너무나 예뻤다! 붉고 탐스러웠을 여름을 지나 지금은 마르고 빛 바랜 붉은 색을 하고 있지만, 그게 정말 감탄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한참을 그 앞에서 어쩔 줄 모르며 서성거렸다. 사람들이 이걸 봤을까… 이렇게 예쁜 수국을 보고 지나갔을까… 생각하면서. 사진을 찍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주었다. 수국이 이렇게 아름답게 시들고 있다고!

처음으로 ‘시들다’라는 말이 ‘피다’라는 말처럼 멋지단 걸 알았다. 그 새로운 감정이 얼마나 두근거리는 것인지 모른다. 처음 느끼는 ‘시들다’ 라는 말을 마음에 다시 새겨 놓았다.

해금을 하면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잣대가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 해금소리는 매끄럽거나, 보드랍지 않다.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그런 소리는 아니다. 때로는 거칠고, 삐죽하다. 대책없이 목놓아 울기도 하고, 미울 정도로 깔깔거리기도 한다. 한때 깔끔하고, 정돈된 소리를 좋아했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활을 쓰고, 거친 소리가 나면 실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정성들여 소리를 내지만 말끔하게 다듬지는 않는다. 한 가닥의 소리가 아니라 여러 결의 소리가 나는 것이 참 좋다. 팽팽하게 당겨지지 않은 활로 수천가닥의 명주실을 꼬아 만든 현을 긁어 내는 소리. 매끄럽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그 여러 가닥 속에 많은 것들이 들어있는 것 같다. 마음을 써서 듣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는 소리들을 품고 있는 것이 얼마나 근사한가.

가을 날의 해금소리는 여름과는 다르다. 습한 여름에는 부드럽고도 무거운 소리가 난다. 그리고 습도가 낮은 가을에는 해금의 울림통도 바짝 말라서 여름보다 더 카랑카랑 한 소리가 난다. 뭐랄까. 살짝 쉰 듯하지만 시원한 목소리, 그 소리가 주는 울림이 다르다. 해금은 볼품없는 모양을 하고, 세상을 품는 소리를 낸다. 모양 이야기가 나와서 좀 더 보태 본다. 허공에 떠 있는 두 줄, 그리고 그 사이에 끼워져 있는 느슨한 활, 주먹 두 개 만한 작은 울림통. 이게 전부다. 그런 주제에 내지 못하는 음이 없다. 두 줄을 주물러서 모든 음정을 빚어 낸다. 활이 인위적으로 당겨져 있지 않기 때문에, 사그라질 듯한 소리에서부터 앙칼진 소리까지 자유롭게 만든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악기와 쉽게 어울릴 수 있고, 그러면서도 결코 자기의 색깔을 잃지 않는, 해금.

계절이 지나가고 시간이 흘러가면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멋지게 시들어 가는 수국을 보면서 그 변함을 좋아하게 되었다.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점점 더 넓게 느끼게 해준 나의 해금에게도 문득 고맙다.

늘 가을을 지나 겨울이 되면 사그라지는 생명을 붙들고 슬퍼했는데 이제는 좀 다를 것 같다. 시들어야 다시 피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기도 하지만, 시드는 것 역시 멋지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꽃별 해금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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