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에 경운기 몰다 오른쪽다리 절단...장애인 시설서 처음 접한 스키에 매료
1998년 나가노 대회 종합 15위 기록...장애인 보장구 수리기사로 새 인생
“제 인생에 세 번의 전환점이 있었어요. 다리를 잃었을 때, 처음 스키장에 갔을 때, 장애인 보장구 수리를 접했을 때였죠.”
5일 서울 마장동 성동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만난 유인식(52) 성동구 장애인 보장구 클린센터 실장은 삶의 굴곡을 이렇게 말했다. 장애인 동계올림픽 스키 국가대표 출신인 그는 보장구 수리기술자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35년 전인 17살 때 첫 번째 전환점이 왔다. 중학교 졸업 후 군 입대 전까지 파주에 계시는 부모의 생활비에라도 보태려고 제주에서 날품팔이를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경운기로 밭을 갈고 있는데 로터리(회전하면서 흙을 잘게 부수는 장비)에 오른쪽 다리가 말려 들어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무릎 10㎝ 아래로 다리가 남아 있지 않았다. 군인의 꿈은 그렇게 사라졌다.
사고 후 거의 3년을 두문불출하던 그에게 주위 사람들은 “기술이라도 배워야 먹고 살 것 아니냐”며 장애인 시설 입소를 권했다. 그렇게 찾아간 한국소아마비협회 산하 정립회관에서 유 실장은 두 번째 전환점을 맞았다. 1983년 정립회관 대표로 참가한 3박4일 동계캠프에서 스키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이다. “스키를 타고 맞는 바람이 그렇게 시원할 수 없었어요. 4년 만에 맨몸으로 달려본 거 같아요.”
사람들은 외발로 스키를 타는 그와 리프트를 타는 것조차 꺼렸다. 주변에서 “다리도 없는데 무슨 스키냐”라고 수군거렸다. 여름에는 막노동을 전전하고 겨울에는 스키장 인근에 방을 구해 맹훈련에 돌입했다. 배고픈 건 참을 수 있지만 스키가 아니면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1992년 프랑스 알베르빌부터 1998년 일본 나가노까지 장애인 동계올림픽 스키 국가대표로 참가했다. 나가노 대회 때는 알파인 스키 회전ㆍ대회전 부문에서 종합 15위를 기록했다.
80만원짜리 스키를 사서 왼쪽 다리가 없는 장애인 선수와 하나씩 나눠 신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도 견뎠지만 커가는 자식들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92년 결혼 이후 동계훈련을 한다고 제대로 된 직장 한 번 가진 적이 없었다. “스키 안 타고 구걸이라도 했다면 아이들에게 1년에 한두 번은 자장면이라도 사줄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스키를 더 탈 수가 없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스키를 그만 둔 그는 서울과 수도권 일대의 일일 알뜰시장에서 일하며 월 120만원 정도를 벌었다.
2011년 유 실장은 세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전환점을 맞았다. 서울시 장애인체육대회 관련 인터넷 사이트를 둘러보던 중 성동구 장애인 보장구 클린센터 홍보영상을 보고 유 실장은 무릎을 쳤다. “장애인들이 땀을 흘리며 보장구를 수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저 행복했어요. ‘아,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6개월 교육을 수료한 뒤 유 실장은 보장구 수리업체들을 거쳐 2월 친정이라 할 수 있는 성동구의 보장구 클린센터 실장으로 부임했다. “장애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보장구를 제 손으로 수리한다는 것만으로도 생애 가장 보람된 일입니다.”
김민정기자 fac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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