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륭 노조원 화장실 문 열어 본 경찰 성희롱 사건, 항소심서 원고 일부 승소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3부(박관근 부장판사)는 기륭전자 여성 노조원 박모(52)씨가 국가와 경찰관 김모(46)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박씨에게 3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5일 밝혔다.
박씨는 2010년 4월 회사 임원과 다툼을 벌여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박씨는 “경찰서 형사과 사무실 안에 설치된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고 있을 때 김씨가 강제로 문을 열어 견딜 수 없는 성적 수치심을 느꼈고, 이 때문에 손발이 마비돼 응급실에 실려갔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이에 “그런 사실이 없다”며 오히려 박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명예훼손 소송은 2012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나면서 끝났다. 당시 대법원은 “박씨가 상당한 수치심을 느꼈을 것이 명백하다”고 판단했고, 이를 근거로 박씨는 국가와 김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박씨가 당시 옷을 벗고 용변을 보고 있었다고 인정할 수 없고, 옷을 입은 채 전화를 하는 상태에서 경찰이 무엇을 하는지 확인하려고 문을 약간 더 열었다고 해서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볼 수 없다”며 국가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박씨가 화장실 안에 있는 것을 알면서도 김씨가 들여다본 사실이 인정된다”며 “지극히 내밀한 공간인 화장실 문을 정당한 사유 없이 연 행위 자체만으로도 당혹감을 넘어 상당한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어 “피의자의 인권을 존중할 책무가 있는 경찰공무원이 정당한 직무 범위를 벗어난 행동한 것으로 위법하다”며 “이로 인해 받았을 박씨의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김씨가 문을 연 것이 아니라 이미 열려 있는 상태에서 빨리 나오라는 취지로 손짓만 했다고 하더라도, 남성 경찰관이 여성 피의자가 있는 화장실 안을 들여다본 행위는 박씨가 실제로 용변을 보고 있었는지와 상관없이 수치심과 모욕감을 줬다”고 지적했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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