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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사형제 폐지의 의미

입력
2014.11.0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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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난히 사형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구미 택시기사 살해범, 서울시 의원, 윤일병 사건 가해 병사, 세월호 선장에게 이미 사형이 구형된 바 있었고, GOP에서 총기를 난사한 병사에게도 사형이 구형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형제를 지지하는 여론이 만만치 않다. 그들은 사형이 국가의 책무인 것처럼 말한다. 중범죄에 대해 사형을 집행함으로써 보복감정을 충족시키고 사회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줘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사형의 효과를 냉정하게 따져보면 사형이 집행된다고 해도 실제로 달라지는 것을 찾기 어렵다. 기존의 여러 사회과학적 연구들은 사형의 범죄억제력이 입증된 바 없다고 입을 모아왔다. 예비범죄자들에게 ‘범죄자는 반드시 검거되고 처벌된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은 중요하지만, 사형과 같은 극형을 도입한다고 해서 범죄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형집행이 피해자 가족들의 사회복귀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실제로 효과가 의심되는 사형제에 집착하는 것은 국가다. 만약 당장 다음 주에 사형이 집행된다고 가정해보자. 매스컴에서는 연일 톱뉴스로 다룰 것이다. 사형당하는 사람들의 신상이 공개되고, 그들의 잔인한 범죄행각들이 자세히 묘사될 것이다. 가해자의 친지ㆍ지인들을 찾아 다니며 인터뷰를 따고, 경황이 없는 피해자 가족들에게도 마이크를 들이댈 것이다. 사형집행 전 날에는 사형이 어떻게 집행되는지를 3D 그래픽 화면과 인포그래픽스로 볼 수 있을 것이며, 당일 날에는 집행현장에 장사진을 친 중계차를 통해 현장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사형이 집행되고 나면, 국가는 ‘이제 할 만큼 했다’며 책임에서 벗어나게 되고, 시민들도 ‘이만하면 됐다’며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앞서 말한 대로 사형이 집행돼도 흉악범죄는 줄어들지 않고 피해자 가족들은 여전히 고통과 슬픔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결국 사형제로 이득을 보는 것은 국가뿐이다. 범죄로부터 사회를 보호하지 못한 책임이 있는 국가의 입장에서는 사형제야말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수단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성숙하지 않은 나라들이 사형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유혹을 떨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양한 범죄대책이나 피해자보호대책을 강구할 수 없는 무능하고 정당성 없는 국가에게 사형은 참으로 편리한 통치수단이 아닐 수 없다. 얼마 남지 않은 사형제 존치국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지금까지 한 얘기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사형폐지론자들이나 사형폐지국들은 범죄와 범죄피해자 문제에 결코 무관심하지 않다. 오히려 더 많은 관심과 더 많은 책임을 지려고 한다. 사형을 통한 복수와 응징이라는 단순하고 효과 없는 방법에 반대할 뿐이지, 범죄가 발생하는 구조적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정책이나 시민적 연대성을 강화하기 위한 근본적 사회개혁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선도적인 사형폐지국들에는 대개 범죄피해자 가족들이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물질적ㆍ심리적 지원 프로그램이 잘 갖춰져 있다. 사형폐지론자들이 범죄피해자 문제에도 동시에 관심을 보이는 것 역시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사형폐지론은 단순히 사형제도를 없애자는 소극적인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범죄를 막지 못하고 무고한 생명이 목숨을 잃은 현실에 대해 국가와 사회가 더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적극적인 의미로 해석돼야 한다. 사형의 사이비효과로 시민들을 현혹시키려는 국가에 맞서, 복수와 응징의 악순환을 끊고 안전한 사회를 위한 근본적인 사회개혁을 요구하는 것이며, 범죄로 고통받는 피해자와 가족들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형폐지를 둘러싼 논란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논의돼야 한다. 얼마 전 민청학련 사건의 사형수였던 유인태 의원이 사형폐지법안을 발의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의원들의 서명을 받기 시작했으며, 이달 17일에는 인권사회단체와 종교단체들이 국회에 모여 사형폐지를 위한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또 한 번 국가적 차원의 중대한 결단이 요구되는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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