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사무실 안에서 보이는 하늘의 햇빛만은 아직 가을 느낌 그대로인데 ‘가을의 낭만’을 즐길 사이도 없이 시간이 흐른다. “가을을 탄다”며 어떻게 하면 기운을 차릴 수 있느냐는 동료들의 말을 듣고 가을은 원래 그런 거라고 웃으며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가을은 우울해질 수 있는 계절이다.
가을이 되면 기분이 울적해지고 의욕이 처지고 그야 말로 ‘우수’에 젖게 되는 경우가 많다. 심하면 단순히 가을 분위기를 타는 것이 아니라 계절성 우울증이라고 해서 계절에 따라 우울한 것이 더 심해질 수도 있다. 가을은 단풍과 멋진 풍경으로 아름다운 계절이지만 누군가는 정말 ‘고독’을 느끼는 계절이기도 하다.
가을에 더욱 기분이 쳐진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하루에 햇빛을 쬐는 시간이 몇 분이나 되는지를 물어본다. 대부분은 “그럴 시간이 별로 없다”고 대답한다. 실제로 가을이 되면 의욕이 적어지고 우울한 마음이 자주 나타나는데 햇빛과 연관성이 많다. 일조량이 줄어들면서 몸과 마음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가을이 되면 일조량이 감소하면서 우리 몸에서 정상적으로 분비되던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의 분비가 줄어 기운과 의욕이 떨어지는데 계절성 우울증의 경우 햇빛의 양과 일조시간의 부족이 에너지 부족과 활동량 저하 등 생화학적 반응을 유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햇빛을 쬐는 것은 많은 의미가 있다. 그 자체로도 좋지만 우리 몸은 햇빛을 통해 비타민D를 피부에서 합성한다. 비타민D가 부족하면 뼈성장에 영향을 줄 수 있고 기분 조절에도 영향을 준다.
작년에 서울대 학생들이 비타민 부족이 심각하다는 기사가 나왔다. 5,241명을 대상으로 건강검진을 했더니 96.2%에 달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비타민D가 부족했고 실외활동 시간이 하루에 30분이 안되는 학생이 45.1%나 됐다. 주로 실내에서 공부를 하다 보니 햇빛을 보는 시간이 적고 햇빛으로 인해 합성되는 비타민이 적다는 이야기였다. 이는 대학생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대부분의 실내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들과 중ㆍ고교 학생들에게도 해당될 수 있다.
2년 전 우리나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5년간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비타민D 결핍증으로 진료를 받는 사람이 5년간 816%나 증가하고 연평균 증가율이 81.2%나 될 정도로 늘어났다고 한다. 간단히 비타민D가 부족한 사람이 늘어난다고 볼 수도 있지만 우리에게는 햇빛을 보고 쬐고 즐기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의미로 느껴진다.
비타민D가 정서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기전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지만 뇌의 해마 부위에 비타민D가 작용하는 수용체의 분포가 많고 이 부위가 우울증과 관련 있다는 보고가 있다. 또 우울증상이 있을 때 의욕저하로 활동량이 줄어들면서 낮 동안의 햇볕을 충분히 쬘 수 없는 상황이 되풀이돼 햇빛과 비타민D와 우울한 기분이 연관된다고 한다. 호주에서 735명의 성인에서 혈중 비타민 농도와 우울, 불안, 스트레스와의 연관성을 조사했을 때 여성에서는 연관성이 없었지만 남성에서는 혈중 비타민D 농도가 낮은 경우 우울증상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고양시의 한 중학교에서는 실제로 학생들에게 하루 30분간 햇빛쬐기 운동을 하면서 생활 습관과 건강이 어떻게 달라지나를 확인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정크푸드 대신 신선한 음식을 먹으려는 노력을 하고 질 높은 잠을 자기 위해 스마트폰을 머리맡에서 치우는 연습을 하면서 하루 30분이라도 운동장에서 또는 벤치에서 햇빛을 느끼는 것이다. 마음 건강을 생활 습관으로 키우는 프로젝트인데 햇빛을 쬐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중 하나다. 아이들의 반응은 매우 좋다. 햇빛을 쬐어야 한다고 하니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해한다.
초겨울이 다가오고 있지만 햇빛이 쨍쨍할 때는 빛 자체를 느끼고 싶어진다. 호르몬, 정서 영향, 비타민 등 모든 것을 떠나서 그 자체가 즐거움과 심리적 위안을 준다. 가을의 낙엽과 분위기도 즐기지만 오늘은 햇빛을 한번 그대로 느껴보자.
박은진 인제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