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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유승민 의원이 옳다

입력
2014.11.04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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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유승민 의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는 원조 친박그룹에 포함된다. 2005년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대표를 맡았을 때 비서실장을 역임했고 2007년에는 김무성 현 새누리당 대표와 함께 조직과 정책ㆍ메시지를 분담해 당시 예비후보였던 박 대통령을 보좌했다. 지난 대선에서는 경제 브레인으로서 중앙선대위 부위원장을 맡아 박 대통령을 도왔다.

하지만 그가 ‘친박 내 야당’으로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오래 전부터 박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위기론이 팽배하던 2012년 10월에는 ‘후보 빼고 모두 바꾸자’며 선대위 총사퇴를 촉구해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원조 친박'과 '쓴 소리'야말로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을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두 단어 아닐까 싶다. 그런 유 의원이 최근 잇따라 청와대를 향해 각을 세우며 또다시 정치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일각에서 “저러다 친박에서 축출당해 ‘출박(出朴)’신세가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그의 비판은 아슬아슬했다.

유 의원이 청와대에 날린 3번의 돌직구는 공교롭게도 국정감사 과정에서 나왔다. 지난달 7일 외교부 국감에서 박 대통령의 유엔총회 방문 기간에 발생한 보도자료 소동을 거론하며 “이거 누가 합니까. 청와대 얼라들이 하는 겁니까”라고 비판한 유 의원은 다음날 통일부 국감장에서도 인천을 방문했던 북측 최고위급 3인방의 청와대 예방 제안을 거부한 것을 질책하며 “그렇게 나이브 하나”라며 정부의 전략부재를 꼬집었다.

경상도 사투리로 어린 아이를 뜻하는 ‘얼라’와 순진하다는 의미의 ‘나이브’라는 단어를 사용한 데선 짐짓 청와대 참모진을 비꼬려는 의도가 엿보이나, 톺아보면 두 사건의 본질을 이보다 더 명징하게 표현할 단어가 또 있을까 싶다. ‘미국이 한중 관계를 오해할지도 모른다’는 판단 아래 말 한마디로 국익이 오락가락하는 외교 현장에서 “중국경도론은 오해”라고 선언했다면 ‘얼라’참모들은 차라리 징계를 받아야 마땅하다. 간만에 훈풍을 탈 수 있는 남북관계의 호기를 발로 차버린 ‘나이브’한 외교안보 사령탑도 사실이라면 질책대상이 아닐 수 없다.

지난달 27일 종합국감장에서 날린 유 의원의 마지막 돌직구는 박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그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재연기는 대선공약 파기”라며 “전작권 전환은 국가 안위라는 현실적 관점에서 냉철하게 봐야 할 사안이라 공약 파기가 아니다”는 청와대의 공식 입장을 반박했다. 박 대통령에 대한 불경으로 비춰질 수도 있는 소신발언이지만 “지도자가 북한의 위협을 감안할 때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하면 대다수 국민이 이해할 것이고 이런 문제는 털고 가야 한다”는 뒷말까지 감안하면 도리어 그의 진정성이 도드라져 보인다. 박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공약이었고 당선자 시절 인수위 보고서와 취임 후 국정과제보고서에도 들어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공약파기’라는 그의 주장이 틀린 것도 아니다.

정치권에서는 유 의원의 쓴 소리를 자기정치 행보로 해석하는 모양이다. 내년 5월 원내대표 경선을 겨냥해 유 의원이 새누리당 의원들을 접촉하고 다닌다는 소식까지 들리는 것을 보면 그런 해석이 나올 법도 하다. 여권에서 대구ㆍ경북의 차기 주자로 꼽히는 유 의원으로서는 이런 저런 견제도 자신이 감당해야 할 운명일 뿐이다.

분명한 것은 친박 의원 누구도 유 의원의 쓴 소리를 틀렸다고 바로잡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의 지적이 박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주변 참모들을 나무라는 훈계가 아니라고 반박할 친박 의원도 그리 많지는 않아 보인다. 도리어 대통령 면전에서 입바른 소리를 했다가 ‘얼음 광선’을 맞고 어떤 장관이 짐을 쌌다는 저잣거리 이야기까지 나오는 마당에 자기 목소리 내는 친박 정치인 한 명쯤은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유 의원은 저력도 있다. 친박계가 학살당한 18대 총선 공천에서 살아 남았고 2011년 7.4전당대회에서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정책통으로서 능력을 부정하는 이도 없다. 유승민 의원의 쓴 소리는 뚝심과 자신감의 소산이 분명하다.

김정곤 정치부장 j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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