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취지에서 정책을 내놓아도 의도와는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자주 있다. 정부가 시장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이 바로 이런 경우다. 박근혜 정부는 가계 통신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단통법을 만들었다. 과도한 단말기 보조금지급에 따른 과잉소비를 줄이고 이용자들간에 차별을 없애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시행 한 달이 지난 지금 엉뚱한 결과가 나왔다. 취지와는 달리 소비자들은 혜택을 볼 수 없으니 구매를 자제하고 있다. 휴대폰 판매가 저조해지자 제조업자들은 울상이다. 신규가입이 줄어들면서 이동통신사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고 5만여 곳 휴대폰 매장들도 죽을 지경이다. 단통법으로 소비자 제조업체 이통사 모두 불편한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단통법 시행 한 달 만에 일부 대리점에서 아이폰6를 10만원대에 기습 판매하는 명백한 불법이 벌어졌다. 사실상 단통법 이전으로 돌아간 것이나 마찬가지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단통법을 계속 끌고 가려면 명백한 불법을 저지른 휴대폰매장과 이를 적어도 방조한 이통사들에 대해서 법률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벌칙을 부과해야 한다. 불법을 아예 뿌리를 뽑지 못하면 단통법은 존재 이유가 전혀 없다. 때문에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해당 휴대폰 매장에 대한 과징금 부과 등 구체적인 제재 방안 마련에 착수했다. 방통위는 또 이동통신 3사 임원들을 불러 재발 방지를 촉구했다고 한다. 겁을 먹은 일부 휴대폰 매장들은 기습 개통했던 것을 취소하거나 기기 회수에 들어갔다.
문제는 주무부처가 칼만 휘두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일이 발생할 때 마다 주무부처가 나서서 일일이 단속을 하고 제재를 하는 것이 가능한지, 그리고 얼마만큼 효과를 볼 것인지 의문이다. 영세 휴대폰매장만 잡도리하는 꼴이 될 수 있다. 과거 이통사들에게 과징금을 백날 물려도 효과는 미미했던 경험이 있다. 그래서 단통법을 만들었는데 결과는 도루묵이 된 것이다.
단통법을 유지할 자신이 없으면 이를 보완하거나 폐지해야 한다. 물론 정부가 시행 한 달밖에 되지 않은 법을 고치려 들면 시장의 불신과 함께 온갖 역풍에 노출될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때문에 정부는 좀 더 지켜보자는 입장이지만 이미 시장의 반응은 격앙되어 있다. 소비자들의 눈높이에서 저렴하고 투명한 통신비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금 통신시장에서는 규제보다는 경쟁이 해법이다. 보조금 상한제, 요금인가제 등은 이통사간 경쟁을 방해했던 요인으로 꼽힌다. 이통사간 합리적 경쟁을 유발하는 정책은 가계 통신비를 줄일 수 있는 적절한 방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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