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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모그 줄이기 停車·停産·停工… APEC기간 베이징 올스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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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모그 줄이기 停車·停産·停工… APEC기간 베이징 올스톱

입력
2014.11.04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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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질 보장 위한 특단의 대책… 차량 홀짝제·진입 제한 조치에 우유배달·택배 등 불편 잇달아

오염물질 배출 막아라… 베이징시 관공서 강제 연휴 실시, 도심 모든 건축 공사장 작업 중지

100만명 순찰대 "테러 꼼짝마" 곳곳서 검문·소수 민족 통제 더 강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둔 지난달 24일 스모그로 뿌연 중국 베이징 톈안먼 인근에서 의장대가 행진하고 있다. 베이징=로이터 연합뉴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둔 지난달 24일 스모그로 뿌연 중국 베이징 톈안먼 인근에서 의장대가 행진하고 있다. 베이징=로이터 연합뉴스
APEC 정상회의가 열릴 옌치후의 썬라이즈켐핀스키 호텔. 베이징=로이터 연합뉴스
APEC 정상회의가 열릴 옌치후의 썬라이즈켐핀스키 호텔. 베이징=로이터 연합뉴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로 인해 4~11일 우유를 배달할 수 없습니다.”

중국 베이징의 우유업체 싼위안(三元) 일부 대리점이 최근 고객들에게 양해를 구한다며 보낸 안내장의 문구다. APEC과 우유가 도대체 무슨 상관인가.

사정은 이렇다. 중국은 5~11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APEC 회의 기간에 스모그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데 비상이 걸렸다. 중국의 달라진 국가적 위상을 한껏 뽐낼 국제잔치를 잿빛 스모그로 망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달 19일 베이징 국제마라톤대회에는 베이징의 PM 2.5(지름 2.5㎛ 이하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344㎍/㎥를 기록했다. 세계보건기구 기준치(25㎍/㎥)의 14배에 가깝다. 행사 참가자들은 마스크를 쓴 채 톈안먼(天安門) 광장을 달렸고 이름난 선수들 일부는 경기를 아예 포기했다.

차량 운행ㆍ난방 제한에 택배도 차질

각국 정상들 앞에서 이런 불상사가 재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중국은 최근 ‘APEC 회의 베이징시 공기 질 보장 방안’이란 특단의 대책을 내 놨다. 골자는 스모그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차량 운행, 공장 가동, 건설 공사 등 3가지를 줄이는 정차(停車), 정산(停産), 정공(停工)이다.

이에 따라 우선 3일부터 베이징에서는 차량 홀짝제 운행이 시작됐다. 홀수날엔 차량 번호판의 끝자리가 홀수인 차량만 운행할 수 있다. 베이징 번호판이 아닌 외지 차량은 아예 베이징으로 들어올 수도 없다. 화물차도 미리 통행증을 받아야만 진입할 수 있다. 통행증이 있다 해도 자정부터 새벽 6시까지는 시 외곽에 한해 운행할 수 있고, 순환도로인 5환(環) 안쪽 시내로는 들어올 수 없다. 속도가 느린 차와 소형 삼륜차(三輪車)도 같은 시간에만 운행이 허용된다. 심지어 오토바이조차 5환 안쪽 시내에선 탈 수 없다.

이 때문에 우유를 실은 대형차가 베이징 안으로 들어오는 것도, 소형 삼륜차나 오토바이로 집집마다 우유를 배달하는 것도 쉽지 않게 되자 싼위안이 아예 ‘배달 불가’ 통지를 한 것이다. 아침 우유를 일주일 넘게 못 먹게 된 사람들의 원성이 커지자 싼위안은 “우유가 배달되지 못하는 곳은 전체의 5%에 불과할 것”이라고 해명까지 했다.

APEC으로 인한 시민 불편은 이 뿐이 아니다. 기온은 내려 가는데 난방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됐다. 베이징과 붙어 있는 톈진(天津)시는 APEC 기간 지역 난방 공급을 중단키로 했다. 한밤밤중에도 난방 공급이 안 돼 추위에 떨며 잠을 청해야 할 판이다. 베이징의 명물 중 하나인 길거리 양고기 꼬치구이인 양러우촨(羊肉串) 구이점도 싹 사라졌다. 고기를 구울 때 나는 연기가 스모그를 유발할 수 있다는 이유로 철거 당했기 때문이다. 일부 매점과 소매점, 분식점도 APEC 기간엔 영업하지 말라는 요구를 받았다는 글도 인터넷에 올라오고 있다. 이 기간 택배는 물품 중량이 10㎏을 초과할 경우 베이징으로 보낼 수도 없다.

기업은 ‘자발적인’ 공장 가동 중단

기업의 피해도 적잖다. 중국은 APEC 회의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 베이징에 있는 중앙기관과 국가기관, 사업단위, 사회조직, 베이징시 기관 및 사회단체 등에 대해 7~12일 연휴를 실시하기로 했다. 이어 기업과 기타 사회조직 등은 상황에 따라 자율적으로 휴가를 실시할 수 있도록 했다. 말이 ‘자율’이지 이번 휴가는 실제로는 선택 사항이 아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오염물질을 배치하지 않는 업체라고 하더라도 생산을 할 경우 부품이나 원료를 공급받기 위해선 자연스레 운송 및 물류 수요가 발생하기 마련”이라며 “이에 따라 당국에서 적극적으로 가동 중단과 감산을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라 이를 무시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베이징은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69개 업체에 대해서는 생산 중단 조치를, 72개 업체는 감산 조치를 내렸다. 베이징 중심에서 동쪽으로 200㎞ 떨어진 탕산(唐山)에서도 252개 업체가 생산 중단 및 감산에 들어갔다.

공사판도 모두 멈춰 섰다. 지난 3일 0시부터 12일 0시까지 5환 내 모든 건축 공사장에 대해 공사 중단 명령이 내려졌다. 건물을 철거하는 작업이나 석재를 자르는 일, 모래나 시멘트 운송도 모두 금지다. 당국에선 5,000㎡ 이상 대형 공사장엔 모두 카메라를 설치해 24시간 감시하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 두 달간 공사 입찰 자격을 주지 않을 방침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당시보다 강도 높은 처벌이다. 중국 환경부도 별도로 16개의 감독조를 편성해 베이징과 주변 지역을 돌며 감시하고 있다.

테러도 비상, 100만 규모 순찰대 운영

중국 당국의 또 다른 과제는 테러를 막는 데 있다. 중국에선 분리 독립 운동을 벌이는 위구르인들의 저항과 테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3월 윈난(雲南)성 쿤밍(昆明)역 무차별 칼부림 테러로 170여명이 사상자가 난 데 이어 5월엔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烏魯木齊)에서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해 31명이 숨졌다. 7월 사처(莎車)현 충돌 당시엔 96명이 사망했다.

중국 당국은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베이징 APEC 기간 테러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경찰의 비상 경계 태세를 최고 수준으로 올린 상태다. 당국은 또 일반 경찰뿐 아니라 테러 진압 요원, 무장 경찰 등을 모두 동원하고 퇴직 교사와 군인 등 자원봉사자까지 모아 무려 100만명 규모의 순찰대를 운영하기로 했다. 헬리콥터와 경찰 항공대도 투입해 공중에서도 24시간 감시한다. 768개의 초고해상도 감시 카메라도 새로 설치했다. 지난 1일부터는 베이징으로 진입하는 도로 200여 곳에서 검문도 실시하고 있다. 경화시보(京華時報)는 이 같은 감시활동으로 경찰이 이미 1,000명이 넘는 테러 혐의자를 검거했다고 전했다. 폭발물 제거를 전담하는 로봇도 투입됐다.

소수 민족에 대한 통제는 더 강화됐다. 망명 위구르인 단체인 세계위구르회의(WUC)의 딜사트 라시트 대변인은 “중국 당국이 최근 신장위구르자치구 전역에서 무장 경찰을 증강해 위구르인 가정을 새벽에 급습하는 등 부재자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행업은 황금연휴 특수

하지만 뜻밖의 황금 연휴로 여행업과 항공업은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베이징은 공공기관 등이 7~12일 휴무하고 학교, 공장, 기업 등도 사실상 대부분 쉬기 때문에 자연스레 여행객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 기간 항공료와 숙박료는 이미 평상시에 비해 30% 이상 올랐다.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5~10일 베이징을 출발해 한국으로 가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편은 이미 만석이다.

중국은 이번 APEC 회의를 철저하게 중국식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10, 11일 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옌치후(雁棲湖)는 베이징 중심에서 북동쪽으로 50㎞ 떨어진 옌산(燕山) 아래 경치가 수려한 곳이다. 동방에서 떠 오르는 태양을 연상하게 하는 선라이즈켐핀스키(日出東方)호텔은 이번 행사장의 볼거리 중 하나다. 호텔 옆엔 대형 태양열 전지판이 즐비하다. 이 호텔은 최첨단 생태환경 기술을 총동원해 청정에너지사용율 100%에 도전하고 있다. 행사를 돕기 위해 8,323명의 후보자 중에서 뽑은 2,280명의 청년들은 중국 전통 문화의 특색과 현대적 감각이 조화된 복장을 입고 움직인다. 이들 중 30%가 석ㆍ박사다. APEC 정상회의를 제외한 나머지 행사는 주로 베이징 중심의 올림픽공원 안 국가회의센터에서 진행된다. 이곳에선 142번의 연회 모임이 열리고 모두 7만3,000여명에게 식사가 제공된다.

베이징 APEC 회의의 주제는 ‘미래를 향한 아태 동반자 관계를 함께 건설하자’ 다. 의제는 ▦지역경제일체화 추진 ▦경제창조혁신발전, 개혁, 성장의 촉진 ▦전방위 기초시설 및 상호연결 건설 강화이다. 중국 주도의 경제 질서를 만들어 중국이 국제사회의 리더로 발돋움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국가적인 행사라도 그 때문에 민간이 치러야 할 이런저런 피해가 적지 않자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기업 관계자는 “공장 가동 중단과 감산으로 인한 손실이 크지만 이에 대한 보상이 전혀 없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쑹궈쥔 런민(人民)대 교수는 4일자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서 “대기질을 개선하기 위한 단기적 조치가 반복되고 있는 것은 중국이 환경문제 해결에 실패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이라고 지적했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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