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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화의 길 위의 이야기] 백화점 화장실

입력
2014.11.04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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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상품 안내서가 집에 굴러다니기에 그냥 뜯어보게 되었다. 종이 질이 너무 좋고 색감도 훌륭했다. 여러 가지 신기한 것들이 많아서 한참 들여다보고 있자니 오랜 시간 쇼핑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상품들도 모두 아름다워서 마치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느낌이 들었다.

초라한 행색으로 매장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자면 점원도 무시한다. 명품에도 기가 죽지만 백화점 화장실에 가면 어쩐지 마음이 불편해진다. 일 보면 안 될 것 같다. 백화점이란 잡화점. 이제는 시장처럼 드나드는 곳이 되었지만 아직도 그런 주눅이 든다. 더 기분 나쁜 것은 가격이다. 정말 헉 하는 가격의 물건들이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것들이 날개 돋친 듯이 잘도 팔린다. 돈 잘 버는 인간들이 그렇게 많다니 훌륭한 일이다. 백화점이란 욕망의 전시장. 내가 갖고 싶은 것이 거기 다 있고 내가 가질 수 없는 것들도 거기 다 있다. 나는 그것들을 쳐다보며 만족감과 기쁨을 느끼지만 그곳에서 나란 고유성은 간단하게 잊힌다. 구매를 통해서 필요가 충족되고 기분이 풀린다. 그러나 소비를 통해 나란 사람의 개성은 온전히 드러날 수가 없다.

얼마 전 생크림이 듬뿍 들어간 롤케이크를 친구가 사왔다. 블랙커피 한잔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 오전의 피로가 싹 가시는 듯했다. 백화점 지하 식품 코너에서 길게 줄 서서 사왔을 텐데 단번에 먹어 치웠다. 그곳에서 파는 과일들은 표정도 근엄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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