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형수처리설비 세계 1위 테크로스 국가기관 해과원 기술로 벼락성장
소송 중에도 "자체 기술" 홍보 朴 대통령 "창조경제 모범사례" 언급
국가기관의 기술을 사용해 연간 수백억원대로 매출이 급성장한 벤처기업이 기술료를 한 푼도 지급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는 이 기업에 대통령 표창까지 수여했다.
수원지법 안산지원 민사합의2부(부장 이동연)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해과원)이 선박평형수 처리설비 제조업체인 테크로스를 상대로 낸 기술료 소송에서 “(원고가 우선 청구한 2009~2011년치 기술료) 12억6,3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3일 밝혔다.
국제 선박들이 운항할 때 배에 담았다가 입항한 항구에서 쏟아내는 평형수는 해양 오염과 생태계 교란의 원인으로 꼽힌다. 해과원은 2002년부터 전기분해기술로 평형수를 정제하는 기술을 연구해왔고, 2005년 10월 테크로스와 설비제작 계약을 체결했다. 해과원은 테크로스에 기술 실시권과 자료를 주고 20년간 관련설비 매출액의 3%에 해당하는 기술료를 받기로 했다.
테크로스는 이후 2006년 3월 세계 최초로 국제해사기구(IMO) 기본승인을 받아 주목받기 시작했고 2010년 부방그룹에 인수되면서 본격적인 설비 생산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 32억원 수준이었던 테크로스의 관련 매출은 2011년 270억원, 2013년 772억원으로 5년만에 23배가 넘는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했다.
하지만 테크로스는 기술료 지급을 거부했고 해과원은 2012년 9월 법원에 소송을 냈다. 소송이 진행 중인 동안 테크로스는 각종 언론을 통해 제품의 우수성을 홍보하며 ‘자체 개발 기술’이라고 강조했고 2012년과 지난해에는 각각 대통령 표창과 해양수산부가 주는 장보고대상(대통령상)을 수상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창조경제’의 모범사례로 언급하면서 업계에서 ‘창조경제의 아이콘’으로 불리기도 했다. 테크로스 측은 법정에서 “(생산 과정에) 해과원의 특허를 사용한 적도 없고, 테크로스가 본래 보유하고 있던 육상수 전기분해기술을 기초로 장치를 개발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테크로스는 2004년 해과원으로부터 평형수 전기분해 장치의 시험설비 납품을 수주하기 전까지는 육상수 전기분해장치만을 제조해 왔다”고 전제한 뒤, “당시 테크로스는 해과원이 선박 적용, 각종 생물에 대한 효과, 이차 오염 방지 보완 기술 등을 보유하고 있는 점을 인정하고 관련 기술을 완성해 줄 것을 요청해 계약을 체결했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해과원은 테크로스가 IMO의 기본승인을 준비하는 전 과정에 기획ㆍ자문ㆍ검토를 해 주는 등 적극적ㆍ실질적 기여를 했다”며 “테크로스는 계약에 따라 해과원에 매출액 중 3%를 기술료 내지 자문료로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2002년부터 연구를 주도해 온 해과원 산하 선박ㆍ해양플랜트연구소의 김은찬 박사는 “아무런 연구 근거도 제시하지 못한 테크로스의 주장에 대해 과학기술의 발전이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 준 재판부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업계에 따르면 이르면 2015년 말 IMO의 국제조약이 발효될 경우 전세계 6만8,000여척(2012년 기준)의 선박에 평형수처리설비 설치가 의무화돼 관련 시장 규모가 대략 80조원으로 예상된다. 테크로스는 현재 국내 선박평형수 처리설비 판매 1위는 물론 세계시장에서도 1위를 달리고 있다.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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