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양적완화 종료 이어 日은 확대… 원·엔 환율 950원 선 붕괴 눈앞
정부 "대외리스크 철저 관리" 불구 뾰족한 정책 카드 없어 속앓이
미국 양적완화 종료에 이은 일본의 양적완화 확대. 하루 사이로 날아든 ‘원투 펀치’에 우리 경제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달러 강세를 동반한 엔화 약세가 가속화하면서 원ㆍ달러 환율과 원ㆍ엔 환율은 가파르게 교차했고, 엔저에 따른 수출 부진 우려로 코스피는 1,950선까지 밀렸다. 정부는 철저한 대외리스크 관리를 공언하면서도 정책 수단이 마땅치 않아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엔저 공포 덮친 환시ㆍ증시
엔저(低)가 덮친 국제 외환시장은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았다. 일본은행(BOJ)의 추가 양적완화가 결정된 지난 달 31일 달러당 112엔을 넘어선 엔ㆍ달러 환율은 이날도 상승세(엔화 가치 하락)를 지속하면서 2007년 12월 이후 7년 만에 113엔선 돌파를 눈앞에 뒀다. 달러 강세에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ㆍ달러 환율도 장중 한때 11원 넘게 치솟았지만 결국 5.1원 오른 1,072.6원에 마감했다. 가파른 엔화 약세에 원ㆍ엔 환율의 하루 낙폭은 무려 11.84원(-1.23%). 100엔당 951.73원으로 낮아지며 이젠 950원선 붕괴까지 눈앞에 뒀다.
국내 증시에도 엔저 여파가 고스란히 전해지며 하락세를 이어가면서 1,950선을 간신히 지켰다. 특히 엔저로 인한 수출 타격 우려에 무려 5.88% 급락한 현대차는 한국전력 부지 매입 이후 한 달 반 새 시가총액 6조원 이상이 증발, 코스피 2위 자리까지 위태롭게 됐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엔화 약세에 따른 수출주 투자심리 위축 등으로 코스피 변동성 확대가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정부 분주한 대응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등 관계 당국은 긴급히 금융시장 동향을 점검하는 등 사태 추이를 주시하고 나섰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확대간부회의를 열고 “일본의 추가 양적완화 조치, 미국의 양적완화 종료와 함께 중국과 유럽의 경제전망도 밝지 못해 대외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며 경제동향 점검과 리스크 관리를 주문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이날 “일본은행의 추가 양적완화가 시장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왔다”며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줄지가 최대 관심사로 가장 (관심이)큰 부분은 환율”이라고 말했다.
한은은 이날 오후 장병화 부총재 주재로 예정에 없던 통화금융대책반 회의를 열고 일본 양적완화 확대의 영향을 점검했다. 한은은 회의 후 “외환시장의 변동성 확대 현상을 면밀히 살펴보면서 시장 참가자들의 기대가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엔저 심화가 수출 등 실물경제와 금융시스템 안정에 미칠 영향을 주의 깊게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정책수단 마땅치 않아 고민
미국과 일본이 정반대의 행보를 걸으면서 우리 정부와 한은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도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게 됐다. 엔저에 맞서기 위해 추가 금리 인하 등 돈을 푸는 정책을 택하자니 내년 중반 전후로 예상이 되는 미국의 금리 인상이 부담일 수밖에 없다. 미국과의 내외금리차가 좁혀지면서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자본이 급격히 이탈한다면 수습하기 어려운 엄청난 후폭풍이 몰려 올 것이 분명하다. 더구나 금리 인하는 우리 경제의 뇌관인 가계부채 악화와도 직결돼 있다. 그렇다고 미국의 금리 인상에 대비해 손을 놓고 있자니 엔저의 공세로 대 중국 수출 등에서 심각한 타격을 감내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미 수출기업들이 감내할 수 있는 엔저의 임계치를 넘어섰다는 진단을 내놓는다. “경제 회복세가 미약한 상황에서 대외 불확성이 커지면서 경제운용 방향을 잡기 어렵다”는 최 부총리의 이날 발언은 이런 곤혹스러운 대책 부재 상황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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