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밥은 ‘끓인 국에 밥을 만 음식’, 또는 ‘국에 미리 밥을 말아 끓인 음식’이다. 사전엔 그렇게 나와 있지만, 뚝배기에 밥과 국을 말아 넣은 뒤 센 불에 한소끔 더 포르르 끓여내는 콩나물국밥 말고는 대개 뚝배기에 흰 쌀밥 담아 설설 끓는 고깃국물 붓고 살코기에 계란지단, 실고추 고명 얹어 내는 게 보통이다. 시중 곰탕집에선 토렴이라고 해서 뚝배기에 밥과 살코기 고명을 담은 뒤, 뜨거운 국물을 여러 번 부었다가 따라내는 과정을 되풀이 하면서 밥알에 국물이 배도록 은근히 데우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 가장 기본적인 국밥은 ‘장국밥’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조선 말엽에 쓰인 조리서 규곤요람엔 ‘기름진 고기를 장에 졸여 밥 위에 부어 만든다’고 했지만, 양지머리 우둔살 사골 같은 부위와 무 등을 넣고 맑게 끓여 기름기를 제거한 뒤 국간장으로 간을 한 국물을 쓴다. 설렁탕이나 육개장, 돼지국밥이나 순대국밥, 콩나물국밥 등도 넓은 의미의 국밥인 셈인데, 요즘처럼 찬바람 불면 옛날 시골의 5일 장터나 쇠전 한 귀퉁이에서 뿌연 김을 무럭무럭 토해내던 국밥 가마솥이 떠올라 아련하다.
▦ 진수성찬은 아니지만, 따끈한 국밥 한 그릇은 빈부귀천을 떠나 모든 이들의 허기를 달래고 스산한 마음을 채워주던 마음의 끼니였다. 그래서 시인은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국밥이 한 그릇인데/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을까/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함민복 시 ‘긍정적인 밥’ 중에서)라고 노래하기도 했다.
▦ 국밥은 많은 사람에게 내기 쉬워서 상가에서도 문상객들에게 대접하는 단골 메뉴가 된지 오래다. 어찌 생각하면 이승에 남은 사람들에 대한 돌아가신 분의 마지막 인사와 선심이 담긴 음식이기도 해서 비록 스티로폼 용기에 담겨 나오는 육개장 국밥일망정 후룩거리다 보면 애틋한 감상에 젖을 때가 많다. 시월의 끝자락을 적시는 가을비가 오락가락했던 지난주, 서울 동대문구의 한 독거노인이 ‘고맙습니다. 국밥이나 한 그릇 하시죠”라는 유서와 10만원을 남긴 채 전세방에서 스스로 유명을 달리했다고 한다. 장례를 치러 줄 누군가에게 남긴 국밥 한 그릇의 마음이 애틋하고, 그 마지막 인사가 너무 쓸쓸하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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