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박물관ㆍ이왕가박물관에
소장했던 아시아 유물ㆍ미술품들
국립중앙박물관 200여점 기획전시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박물관ㆍ이왕가박물관ㆍ이왕가미술관이 수장했던 아시아 유물과 미술품을 추린 특별전 ‘동양(東洋)을 수집하다-일제강점기 아시아 문화재의 수집과 전시’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내년 1월 11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유하고 있는 유물 1,600여점 가운데 200여점을 선보이는 기획전시다.
이번 전시는 일제강점기에 수집된 문화재를 선보인다는 점에서 정치ㆍ역사 등 다양한 관점에서 시대적 맥락을 살필 수 있는 자리다. 전시 유물에 일본 승려 오타니 고즈이가 탐험대를 파견해 신장위구르 지역에서 수집한 ‘천불도’ ‘기마여인’ 등도 포함됐는데 일각에서는 이를 약탈품으로 보기도 한다. 박물관 측은 “해방 뒤 미군정이 조선총독부 재산을 한국 정부에 귀속시킨 만큼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나 소유권을 놓고 향후 일본ㆍ중국 등과 공방이 오갈 수 있다. 그만큼 이번 특별전은 문화재의 순수 문화적 가치 외에 근대 이후 아시아 국가간 정치적 역학관계까지 살펴볼 수 있는 자리다.
문화재에 담긴 정치적 의미는 조선총독부미술관 수장품에 특히 진하게 묻어있다. 1915년 12월 개관한 조선총독부미술관은 중국 한(漢)대의 문화재를 집중 수집했는데 이는 일본이 한반도 문화의 시작을 한이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세운 낙랑의 영향력 때문으로 선전하기 위한 정치적 노림수였다. ‘타율적인 조선사’를 강조하기 위해 한대 문화재를 이용했다는 의미다.
일본은 1938년 덕수궁 석조전 옆에 이왕가미술관을 열어 이왕가박물관 소장품을 전시하고 동시에 일본 미술계 거장들의 작품을 선보였다. 이를 통해 이왕가미술관은 ‘옛 조선의 미술’과 ‘당대 일본 미술’을 함께 전시하는 공간으로서 관객에게 일본이 동아시아의 역사적 흐름으로 인식되게끔 유도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유물은 해방 이후 70여 년 만에 처음 대중에게 선보이는 문화재들이다. 일본인 조사단이 1912년 만주 지역을 돌며 광개토대왕비 모습 등을 그린 ‘여진비’ 스케치, 부여의 정치 중심지였던 북만주 마오얼산에서 1923년 출토된 사람 얼굴 모양 장식 등 수장고에 보관돼온 문화재가 관객과 마주한다.
1940년대 당시 일본 제국주의를 찬양한 일본인 화가 작품 10여점도 처음 공개된다. 그간 군국주의라는 주제 탓에 공개가 금기시 됐던 유물들이다. 그 중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옛 조선총독부 청사 중앙홀의 북벽에 걸렸던 길이 14m의 벽화다. 일본인 화가 와다 산조가 한ㆍ일 양국의 공통 설화 ‘나무꾼과 선녀’를 내선일체의 관점에서 풀어낸 그림이다. 내선일체를 강조하기 위해 북벽에는 금강산, 남벽에는 일본 시즈오카현의 경승지인 미호를 각각 공간적 배경으로 삼았는데 이번에는 북벽 벽화만 공개된다.
이왕가박물관에 전시됐던 중국 북제 시대 반가사유상도 공개된다. 일본 수집상인 우라타니 세이지가 당시 1,162원의 고가에 사들인 6세기 대리석 불상으로, 직사각형의 대좌 중앙에 배치된 반가사유상의 얼굴과 신체는 완벽한 균형감을 갖췄다고 평가 받는다.
아프가니스탄의 잘랄라바드 인근 고대 유적에서 출토된 부처 머리는 기원전 2세기부터 1세기까지 유행했던 후기 헬레니즘 양식을 담았다. 조선총독부박물관이 1920년대 프랑스 고고학 조사단을 이끌었던 아캥 당시 프랑스 기메박물관장으로부터 기증 받은 것이다.
박물관 측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중앙아시아 유물을 통해 당시 일본이 서양과 대비되는 동양의 개념을 만들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한반도 남부 토기와 일본 토기를 함께 전시한 것은 두 지역 토기가 비슷한 점을 강조해 두 민족이 고대부터 친밀한 관계였고 따라서 일본의 식민지화는 당연하다는 식의 인식을 심기 위한 문화통치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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