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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화의 길 위의 이야기] 동그라미

입력
2014.11.03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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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에서는 ‘끼적이기’ 활동을 한다. 이제 겨우 손에 뭔가를 잡을 수 있게 된 아이들이 색연필이나 크레용을 들고 몇 개의 점과 선을 만들어내는 갸륵한 시간이다. 세 살 아이는 찌그러진 동그라미를 그릴 수 있게 되었고 동그라미만 줄기차게 그린다. 몇 개의 동그라미를 그리고 얼굴이라고 우긴다. 곧 세모와 네모도 그리겠지 했는데 이제 직선을 연습 중이다. 스케치북에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 죽죽 북북 열심히 긋고는 비와, 하면서 얼른 우산을 그려주란다. 비는 자기가 내리게 하고 왜 복잡한 우산은 내가 그려야 하는가. 동그라미에 팔다리를 달아줄 수 있게 되었으니 사람을 그리는 일도 가능하다. 팔다리가 가느다란 생명체가 바로 나다. 아이들은 제일 먼저 그린 사람을 ‘나’라 하지 않고 ‘엄마’라 한다. 눈이 바깥을 향해 있고 그 눈으로 제일 먼저 엄마를 보았기 때문일까.

오랜 시간 함께 지냈던 동그라미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가혹한 병이 있다. 노인성 치매 같은 것. 사고의 충격이나 외상으로 기억을 잃는 경우도 있다. 기억의 일부가 망실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드물게는 거의 모든 기억을 잃기도 한다. 환자도 환자를 돌보는 주변 사람들도 극심한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 밑도 끝도 없이 지극한 동그라미 역할을 할 수 없었다고 고백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인간의 능력과 가능성은 무한한 데 반해 인간성을 지지해주는 기반은 실제 매우 약한 것이기도 하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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